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엔 개혁'을 전제조건으로 유엔 분담금 체납액 가운데 일부를 지급할 의향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이크 월츠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로이터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 유엔에 체납한 분담금 중 일부를 수주 안에 우선 지급할 예정"이라며 "연간 분담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선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종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수주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방침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193개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유엔이 긴박한 재정 붕괴 위험에 처해있다며 7월까지 자금이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한 가운데 나왔다.
미국은 유엔 예산의 22%를 부담하는 최대 분담국이지만 지난해 정규 예산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았고, 유엔 평화유지활동 예상 지원금의 30%만 제공하면서 유엔은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게 됐다.
유엔에 따르면 2월 초 기준 정규 예산 미납액의 95% 이상이 미국 몫으로 21억9000만달러(약 3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와 별개로 미국은 평화유지활동 예산 24억달러(약 3조5000억원), 유엔재판소 비용 약 4000만달러(약 586억원)도 체납 중이다. 올해 유엔 정규 예산은 34억5000만달러(약 5조600억원)다.
미 상·하원을 통과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 서명한 연방정부 예산 패키지에는 유엔과 여타 국제기구 분담금 31억달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는 미국 행정부에 예산 범위 내 집행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체납액을 한 번에 모두 지급하기보다는 효율화 등 '개혁'을 요구하면서 부분적으로 분담금을 집행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월츠 대사는 예산으로 확보한 자금이 지난해 미납 분담금에 쓰일지, 올해 분담금에 쓰일지와 관련해 "전반적으로 체납금 해소를 위한 것"이라며 "우리가 확인한 일부 개혁 조치를 인정하는 의미도 있다"고 답했다.
월츠 대사는 "우리는 평화와 안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유엔이 어떻게 잠재력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지에 관한 정당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 1기 시절부터 유엔에 부정적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유엔에 부쩍 누그러진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앞서 지난 1일 폴리티코와의 통화에서 유엔 재정 위기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엔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 개 국제기구에서 미국을 탈퇴시키고 대외 원조를 삭감한 점을 언급하면서 "트럼프가 원칙상으로나마 유엔을 옹호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체불 분담금 일부 납부로 유엔을 재정 위기에서 일단 벗어나게 하려는 쪽으로 선회한 배경에 유엔 기능에 심각한 공백이 벌어졌을 때 국제 분쟁 관리 비용이 미국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가자지구 재건 감독을 명분으로 평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세계 모든 분쟁'에 관여할 여지를 둔 평화위원회가 유엔 기능의 일부를 대체하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다만 일단은 '유엔의 마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한편, 악시오스는 백악관이 오는 19일 워싱턴에서 '평화위원회' 첫 정상회의를 열고 가자 재건 자금 모금 등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7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를 휘황찬란한 미래 도시로 재탄생시키겠다며 세계 각국의 기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는 데다 재건 기구의 투명성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국제사회는 기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