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CEO부터 연예인까지 줄 섰다…'피갈이 주사' 뭐길래

입력 2026-02-06 17:38
수정 2026-02-06 23:39
6일 서울 압구정동 한 기능의학 클리닉. 혈액을 뽑아 자외선을 투과시켜 정화한 뒤 체내에 다시 주입하는 ‘포톤 테라피’(일명 피갈이)를 받기 위해 수십 명의 환자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1회 비용만 50만원, 월평균 병원비는 100만~500만원에 달한다. 눈에 띄는 간판도 없고 특별히 홍보를 하지도 않지만 이미 수개월 치 예약이 밀려 있다. 환자 대부분이 대기업 오너 일가와 기업 최고경영자(CEO), 고액 자산가, 미용·패션 인플루언서다. 클리닉 관계자는 “아프기 전 미리 체계적으로 건강을 관리하려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상륙한 ‘롱제비티산업’ 현재 신체 상태를 분석해 면역력을 높이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기능의학’이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건강 수명 연장을 뜻하는 ‘롱제비티(longevity)산업’이 이미 핵심 트렌드로 자리잡은 가운데 국내에서도 기능의학이 가정의학과와 산부인과 등 비인기 진료과를 중심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원급 병원을 개원한 일반의는 2022년 4만8584명에서 2025년 5만4108명으로 약 11.4% 증가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이후 개원의가 늘고 병원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능의학으로 눈을 돌리는 의사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능의학 검사와 처방은 대부분 비급여여서 가격 규제를 받지 않는 것도 의사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서울 종로구의 한 산부인과는 최근 항산화력 검사와 모발 미네랄 검사, 장내 세균총·환경호르몬 검사 등을 도입했다. 일부 의원급 병원에서는 ‘해장주사’ ‘힐링포션’ ‘명품주사’ 등 수액 처방 상품이 등장했다.

위벽에 보툴리눔 독소를 주입해 위 근육의 움직임을 둔화시켜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도록 하는 ‘위보톡스’도 인기가 많은 시술 중 하나다. 가정의학과 의사 한수민 씨(46)는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 주사보다 위내시경 보톡스가 더 효과적이라고 느끼는 환자가 이곳에 돈을 쓴다”며 “치료보다 종합적인 건강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기존 진료과목과 협업하기도해외에서는 연회비 기반의 프리미엄 건강 관리 서비스인 ‘컨시어지 메디슨’이 하나의 의료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 회원은 전신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와 유전자 분석, 운동·식단·수면 관리 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연회비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모도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이 같은 컨시어지 메디슨 시장은 올해 약 36조2000억원에서 2031년 약 55조8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능의학이 기존 진료과목과 협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능의학 교육을 이수한 가정의학과나 내과 의사가 관련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거나 류머티즘내과, 소화기내과 등 다른 전문의들과 협진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한기능의학회에 따르면 기능의학 치료를 도입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약 170곳으로 내과와 가정의학과, 신경외과 등을 중심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고기동 가천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기능의학은 기존 의학에서 답을 찾기 어려운 환자는 물론 비용이 다소 비싸더라도 고품격 의료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층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며 “저출생 고령화 시대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층’이 갈수록 늘어나는 만큼 관련 산업도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