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한 후 3년 만에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일상에 AI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런 급변의 시대에 예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역사 속에서 ‘무엇이 예술인가’ 또는 ‘예술이 아닌가’에 관한 논쟁은 줄곧 이어졌다. 브루넬레스키가 발견한 원근법은 그림에서도 실제처럼 공간과 깊이를 느끼게 해줬다. 이는 인간 중심적 시각과 과학적 사고를 예술에 연결하는 계기가 됐고 다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들이 르네상스의 꽃을 피울 수 있게 했다. 19세기 중반 사진이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 불안은 오히려 예술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졌다.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는 배의 장면을 빛과 구도, 시선 배열을 통해 회화처럼 구성하며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기계가 현실을 완벽히 재현하자 예술가들은 해석과 표현의 영역으로 깊이 들어간 것이다.
AI 예술도 비슷한 흐름에 놓여 있다. 이미 호기심 어린 예술가들은 창작 욕구와 도전 정신을 건드리는 새로운 붓으로 AI를 대하고 있다. AI는 인간의 감성과 상상, 가치관과 서사를 담아낼 새로운 매체로 진화하고 있다. 2025년 크리스티는 AI 예술 작품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경매 ‘증강 지능’을 진행했다. 증강 지능이란 단어에는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킨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알렉산더 레벤의 작품은 예술이 더 이상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가 그림과 음악, 영화를 만드는 등 창작의 영역에 침투하고 있지만, 인간의 주체성과 예술가의 정체성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제 예술가의 역할은 AI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결정하며, 그 결과물 중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것 그리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미적인 완성도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할 수 없는, 경험과 감정, 안목을 가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판단이다. 생각해보면 예술가는 언제나 ‘감독(director)’이었다. 수백 번의 생성과 재생성, 미세한 프롬프트 조정, 결과물의 선별과 조합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미적 감각과 세계관이 작동한다. AI 예술의 미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기술적 탁월함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본인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창조적 도구이자 협업 파트너로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한 지점이다.
아무리 AI가 정교하게 발전해도 인간은 경험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과 감정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며 유일무이한 자아를 만들어간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서사적 존재”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경험을 이야기로 엮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다. 기술이 창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과 서사를 담아낼 새로운 창으로 활용될 때 AI 예술은 비로소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전례 없는 기술적 전환기를 살고 있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는 삶을 살아가며 쌓은 경험과 감정,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가진 사람이다. AI 역시 예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장을 여는 도구다. 예술에서 본질적인 가치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가이다. AI 예술의 영혼은 서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