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와 더불어
구상
나는 홀로다.
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
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
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
나는 더불어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
이렇듯 나는 홀로서
또한 더불어서 산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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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具常) 시인의 문학 정신을 한눈에 보여주는 시입니다. ‘홀로서기’와 ‘함께 있음’을 대비하면서 ‘대긍정’과 ‘조화의 철학’을 잘 드러낸 작품이지요.
첫 연의 “넘지 못할 담벽”과 “건너지 못할 강”, “헤아릴 바 없는 거리”는 존재론적 간극을 상징합니다. “너”는 결코 내 안으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섣부른 화해로 건너뛰지 않고 홀로됨의 냉정을 먼저 인정합니다. 이것이 ‘대긍정’의 출발점입니다.
그런 다음엔 바로 반대편을 제시합니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과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 이것은 남의 도움 없이 불가능합니다. 나는 홀로이되 홀로만으로 성립할 수 없는 존재이지요. 우리는 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럴 때 “평형”은 중간지대의 타협이 아니라 “홀로”를 지키면서 “더불어”를 아우르는 균형을 의미하지요.
이 시는 지난주에 열린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창립 20주년 기념 강연에서 김재홍 시인?문학평론가가 강연 첫머리에 소개했습니다. 강연 제목이 ‘반전·평화의 시인 구상과 『구도자의 산책』’이었는데, 김 시인은 얼마 전 평론집 『구도자의 산책』을 통해 ‘구상 시에 나타난 가톨리시즘적 일원론’을 깊이 있게 조명한 바 있습니다.
구상 시인의 제자이자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인 김 시인은 구상의 일원론이야말로 단순한 세계관이 아니라 ‘대립을 넘어서는 시적 동력’이라고 분석합니다. 구상이 플라톤주의적 이원론을 벗어난 일원론을 통해 냉전과 이념 대립 시대에도 비대립적 평화의 시를 추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에 따르면 “홀로”는 고독의 심화이고, “더불어”는 휴머니티의 지향이며, “평형과 조화”는 대긍정의 윤리적 형태입니다. 구상의 일원론은 모든 차이를 없애는 하나가 아니라 차이를 품은 하나이고, 신앙의 언어로는 ‘피조물의 연대’, 시의 언어로는 ‘평형과 조화’입니다.
김 시인은 구상의 연작시 ‘초토의 노래’ 중 ‘적군 묘지 앞에서’를 거론하며, 구상이 죽음을 “모든 인간적 가치를 넘어서는 절대적 차원”으로 인식한 덕분에 적군 묘지 앞에서도 그들의 “원한”을 “나의 바람”으로 품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홀로와 더불어’가 다시 읽힙니다. “넘지 못할 담벽”과 “건너지 못할 강”은 단지 개인 사이의 거리만이 아니라 이념과 전쟁이 만든 심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듯,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먹이고 입히고 살게 하면서 얽혀 있습니다. 구상은 그 얽힘 위에서 “평형과 조화”를 추구합니다.
김 시인이 ‘가톨리시즘적 일원론’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구상의 시를 시대의 대립 구도에 가두지 않고, 피조물의 연대라는 더 큰 지평으로 확장합니다. 그 지평은 ‘적군 묘지 앞에서’ 같은 극한의 텍스트에서 더욱 설득력 있게 증명됩니다.
구상 수상집 <침언부어(沈言浮語)>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가 국제펜대회 참가차 일본에 들렀다가 동포들과 좌담회 겸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중년 신사가 “우리 민족은 한 사람씩 놓고 보면 다 우수한데 합쳐 놓으면 싸움질만 하고 큰일을 못하니 어인 민족 특성이며 결함은 어디 있는지 문인으로서 솔직한 소견을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얼마 전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의장인 크리슈나 메논이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 장군은 이튿날부터 일본인의 숭앙을 받았고 한국에 진주한 하지 중장은 그날부터 시비의 초점이 됐는데, 이것으로 보아 한국민은 일본 국민보다 민주주의적인 국민이요, 한국의 민주주의 토대는 일본보다 앞섰다’고 한 것처럼 우리 국민은 시비에 밝은 국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다음 “이 시비 정신의 발동이 소의(小義)와 소아(小我)와 소리(小利)에 너무 치우쳐 대의(大義), 대아(大我), 대리(大利)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의(大義)는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뜻하지요. 소의(小義)는 사사로움을 앞세웁니다. 대아(大我)는 ‘참된 나’, 소아(小我)는 ‘자기중심적인 나’를 뜻합니다.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려면 자기밖에 모르는 소아의 경계를 넘어 대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지요.
대리(大利)는 그야말로 ‘큰 이익’입니다. 대의를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리면 손해 볼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큰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이를 거꾸로 하는 게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니, 개인의 삶이나 정치·외교에서도 대리(大利)를 망각하고 소리(小利)에 집착하면 대패(大敗)하게 됩니다.
이런 정신이 그의 문학적 유지와 맞닿았고, ‘가톨리시즘적 일원론’으로 숙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평형과 조화’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수고를 먼저 떠올리고, 타인에게 담벽이 되지 않도록 나를 돌아보며, 조금씩 홀로와 더불어의 균형을 맞춰 가는 삶! 구상 시인의 대긍정 정신도 여기에서 싹텄을 것 같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