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패권 확보에 '관세' 쓰는 트럼프…韓에 '패키지 딜' 요구할 듯

입력 2026-02-05 17:56
수정 2026-02-06 02:06

“내 에너지 정책은 최대 생산, 최대 번영, 최대 권력 추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10월을 ‘국가 에너지 지배의 달’로 삼는 포고문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새 국가안보전략(NSS)에도 ‘에너지 지배력’이 안보의 핵심으로 규정됐다. 미국의 기조 변화 속에 관세 압박은 무역적자 개선을 넘어 에너지 패권 강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재상향 압박을 받는 한국도 에너지와 관련된 패키지 딜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일 속 ‘1호 대미 투자’는 에너지?
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최근 미국으로부터 대미투자펀드 1호 사업으로 에너지 프로젝트를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투자특별법 통과 지연을 빌미로 한국산 관세율을 15%에서 25%로 올리겠다고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에너지 공급망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정부는 구체적 프로젝트에 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미국 요구는 구체적이지만 법안 통과 등 절차가 남아 ‘1호’가 무엇일지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미국의 에너지 해방’과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 등의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석유와 가스, 원자력, 희토류를 포함한 11개 분야를 ‘국가에너지원’으로 지정했다. 이에 시장에선 1호 프로젝트 후보로 미국산 에너지 구매와 연계된 투자 프로젝트, 원전, 희토류 채굴 및 정제, 블루수소, 송전망, 석유화학 플랜트(ECC) 등을 거론한다. 제조업에 강점을 지닌 한국 기업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는 ‘민간 투자’ 형식이라 1호 프로젝트 후보군에선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투자 지연’을 명분으로 삼는 것 외에도 관세를 투자와 안보 전 영역에 걸쳐 압박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며 “에너지 분야 투자는 물론 농산물과 디지털 문제 등 비관세 협상도 ‘관세 인상’을 내세워 압박해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관세를 통한 에너지 무기화는 과거 페트로달러 패권과 다르게 거래적 성격을 띤다는 점도 특징이다. 정하늘 국제법질서연구소 대표는 “미국 입장에서 인도는 ‘대중 압박’을 위한 서남아시아 파트너 성격이 있지만 한국은 전략적 중요성이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의 에너지 압박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韓은 ‘다변화냐 미국산이냐’ 딜레마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늘릴수록 앞으로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라는 압박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해 관세협상을 앞두고 대미 무역흑자(2024년 기준 557억달러) 축소 압박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중동산 비축유 600만 배럴을 미국산 경질유로 교체했다.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 등 더 큰 청구서를 내밀 기세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안보’를 위해 알래스카 사업 참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올 정도다.

한국은 원유 공급처 다변화와 미국산 수입량 확대 사이에서 딜레마에 처했다. 금전적으로는 ‘중동산 원유 장기계약’이 가장 유리하다. 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석유·가스의 지정학 판도가 미국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한국으로선 캐나다, 러시아, 중동산을 다 저울질하는 게 유리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관세율이 얼마나 높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은 저렴한 러시아산을 조금이라도 도입하길 원했지만 미국·인도 ‘관세-에너지 거래’의 흐름상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편적 관세 인상을 막는 협상을 넘어 에너지 공급망 안보와 연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순히 에너지를 ‘사주는’ 것에 그치지 말고, 원자력 협정 개정 등 우리가 가진 패와 요구 사안을 패키지로 묶어 협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훈/하지은/김리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