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에너지 지배력’ 강화 정책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가늠하기 위해 분주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드릴 베이비 드릴’(파고 또 파라)로 대표되는 미국산 셰일가스 증산, 베네수엘라 중질유 시장 재진입은 ‘국제유가 하향 안정’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미국이 요구하면 고가 원유를 도입해야 하고 정제 효율이 저하되는 부정적 측면도 있어서다.
5일 산업통상부와 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액은 연간 약 1130억달러로 국가 전체 수입의 17.9%를 차지했다. 한국 정유·석유화학산업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고 가공한 뒤 수출하는 데 특화돼 있다.
트럼프 시대에 국내 정유업계 호재는 유가 안정이다. 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입 단가가 낮아져 정유사 마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유가는 수입 물가를 억제하고 지난해 ‘트럼프 관세 위기’에도 무역수지 흑자를 지켜낸 원동력이 돼왔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내려가면 무역흑자는 90억달러 늘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산 원유를 사라는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한·미 관세협상 당시 ‘1000억달러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원유 수입량이 증가하면 정유사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 설비는 대부분 장기계약으로 묶여 있는 중동산 ‘중질유’에서 제품을 뽑아내는 데 최적화돼 있어서다.
미국산 셰일오일은 대부분 ‘경질유’여서 이를 강제로 투입하면 기존 고도화 설비의 가동 효율이 떨어진다. 길게는 회사 한 곳당 수천억원 규모의 개조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 물류비도 문제다. 북미산 원유 운송비는 t당 30달러 안팎인 중동산 원유 운송비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네수엘라산 중질유를 한국이 확보하면 좋지만 운송비가 비싼 건 마찬가지다.
건설업계는 현지 오일 및 가스 터미널 등 플랜트 발주가 늘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원유 수입액의 ‘반대급부’인 중동 지역 프로젝트가 위축될 수 있다.
김대훈/김리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