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흑자의 역설'…발전사 영업익 급감, 철강·석화기업은 비명

입력 2026-02-05 17:54
수정 2026-02-12 15:33
한국의 전기 원가와 산업용 전기요금(판매가격) 산정 구조는 연동돼 있지 않다. 민간 발전사들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한국전력에 전기를 넘길 때 적용하는 원가는 국제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가격에 유연하게 움직이지만, 전기요금은 시장 상황과 에너지 가격, 정치적 요소 등을 고려해 정부가 결정한다. 전기요금이 한 번 오르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 이유다. 국제 에너지 가격에 연동한 전기를 공급받는 중국 기업 등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와 전기요금의 미스매치가 계속되면 결국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석유화학이나 철강 등 위기 업종에 한해서라도 전기요금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기 생산자·소비자 모두 울상원가와 전기요금 간 차이가 벌어지면서 민간 발전사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5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LNG 발전사인 SK이노베이션 E&S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6800억원으로 전년(1조1000억원) 대비 40% 가까이 급감했다. 같은 기간 포스코인터내셔널 발전사업 영업이익도 1700억원에서 1140억원으로 33% 쪼그라들었다. GS EPS 역시 작년 1~3분기 영업이익이 30% 이상 감소했다.

민간 발전사의 경영 악화는 한전에 납품하는 전기 원가(정산단가)가 계속해서 낮아졌기 때문이다. 전기 원가는 석탄, LNG 등 연료 가격에 연동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등으로 치솟은 국제 연료 가격이 꾸준히 내려가자 한전이 전기를 사가면서 책정한 원가도 낮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고정 가격에 장기 계약으로 들여오다 보니 원료를 비싸게 사와 낮은 전기 원가에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산업계는 그러나 이런 가격 하락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한전이 공급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오히려 올라서다. 경기 둔화와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중국의 저가 공세로 코너에 몰린 석유화학과 철강 회사들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전기를 많이 쓰는 국가 기간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과 경쟁하는 미국 중국 유럽 등의 회사들은 다르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라 싼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과 중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평균 요금은 킬로와트시(㎾h)당 181원이었고, 미국 전역의 평균 전기료는 112원이었다. 한국 기업이 여럿 진출한 텍사스주(77.6원)와 조지아주(83.4원)는 더 싸다. ◇ “전기요금 유가 하락세 반영해야”업계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전기 원가에 연동해 유연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기 원가에 해당하는 정산단가가 2022년 ㎾h당 154.17원에서 지난해 125.45원으로 내려가는 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은 119원에서 181원으로 52.1% 올랐다.

한전만 배가 부르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5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증권사들은 추정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한전이 기업에 판매단가를 정산단가보다 ㎾h당 35원 낮춰 받은 2022년 역마진으로 본 손해(10조4116억원)에 근접한 수치다.

한전의 입장도 있다. 2021~2023년 에너지 위기 당시 한전은 계통한계가격(SMP)보다 싼 값에 전기를 팔며 국가 부담을 짊어졌다. 이에 따라 약 43조원의 누적 적자를 감내했다. 정부와 한전은 현재 발생하는 이익을 전기료 인하를 위한 재원이 아니라 재무구조 정상화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산업계 관계자는 “모든 점을 고려할 때 결국 전기요금이 연료비 등과 연동해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며 “그래야 기업들도 전기요금을 예상하고 경영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