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에서 최근 호가를 수억원 내린 ‘절세매물’이 잇따르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부활에 보유세 인상 우려까지 겹쳐 현금이 적은 고령층 1주택자까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5만9003개로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종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난달 23일(5만6219개) 이후 5.0%(2784개) 증가했다. 강남구는 같은 기간 매물이 9.2% 늘었고, 호가를 낮춘 물건도 잇따르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 현대 3차’ 전용면적 82㎡ 집주인은 최근 매도 호가를 57억원에서 56억원으로 내렸다. 지난해 11월 실거래 최고가(60억7000만원)보다 4억7000만원 낮다. 인근 ‘압구정 6·7차’ 196㎡ 호가는 110억원으로 10억원 내렸다.
거래는 뜸하다. 다주택자 양도세 유예 종료(5월 9일)를 앞두고 호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집이 안 팔려 ‘갈아타기’를 못 하는 점도 거래가 부진한 요인이다. 이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종료하되 임대 중인 주택 등 국민의 불편은 최소화할 보완 방안을 다음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입자의 잔여 임차 기간을 보장하고, 매수인의 실거주 의무 적용 시점을 늦추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울 아파트값은 이번주(지난 2일 기준) 0.27% 올라 53주째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덜 오른 관악구가 0.57% 뛰었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앞두고 급매 속속 등장
강남권 다주택자 매물 증가…매수·매도자 간 '줄다리기' “급매 나오면 사겠다고 대기 걸어둔 사람이 서너 명입니다. 다른 중개업소까지 포함하면 대기 수요가 훨씬 많을 겁니다.”(서울 서초구 잠원동 L공인 관계자)
서울 강남권과 한강 벨트 부동산 시장에서 ‘알짜단지 급매’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5월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와 보유세 인상 우려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는 매물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어서다. 현금 여력이 있는 수요자에게는 인기 주거지에 입성할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 낮은 값엔 안 팔겠다’는 매도자와 더 떨어지길 기다리겠다는 매수자가 팽팽하게 맞서 거래는 뜸하다는 게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 강남권 중심 매물 증가세
5일 업계에 따르면 강남권을 중심으로 매도 호가를 1억원 이상 내린 매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2일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 현대 6·7차’ 전용면적 196㎡는 120억원이던 가격표를 110억원으로 10억원 낮췄다. ‘압구정 한양 1차’ 전용 63㎡(중층)도 50억원으로 4억원 내렸다. 지난해 7월 거래된 최고가(56억원·9층)는 물론 KB부동산이 집계한 지난달 평균 매물 시세(52억원)보다 낮다. 압구정동 B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비싼 만큼 양도세 증가분이 다른 지역보다 크다”며 “재건축 후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는 여전하지만 추가 분담금과 보유세 부담에 팔고 나가려는 1주택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10년 이상 보유·5년 이상 거주 1주택자’만 팔 수 있게 하는 등 매도 조건이 까다로운 것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 자이’와 ‘래미안 신반포 팰리스’,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등에서도 호가를 1억~2억원 낮춘 매물이 나오고 있다. 송파구에선 ‘잠실주공 5단지’ 전용 76㎡에서 호가를 42억원에서 40억5000만원으로 내린 매물이 등장했다. 잠실동 K공인 관계자는 “은퇴해 돈 나올 곳 없는 1주택 고령자도 고민이 많다”며 “팔고 떠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 산 사람은 선뜻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 ‘호가 하락 기대’ 관망세 여전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서울 아파트 매물은 5만9003개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방침을 밝힌 지난달 23일(5만6219개) 이후 5.0%(2784개) 증가했다. 송파(3526개→4068개)가 15.4%(542개)로 가장 많이 늘었다. 강남(9.2%) 강동(8.6%) 서초(8.5%) 용산(6.3%) 등도 매물이 많아졌다.
거래는 한산한 편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거래량은 작년 10월 1106건에서 계속 줄어 지난달 401건에 그쳤다. 마포·용산·성동 등 3개 자치구 거래량도 같은 기간 908건에서 210건으로 감소했다. 잠원동 O공인 관계자는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이 다가올수록 호가가 더 떨어질 수 있어 매수자는 느긋한 편”이라며 “원하는 가격에 매물이 나왔다고 알려줬지만 더 지켜보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반포동 D공인 관계자는 “마포 성동 양천 등에서 집이 팔리지 않아 갈아타기 수요자가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북(-4.4%) 강북(-4.1%) 금천(-3.5%) 구로(-2.7%) 등은 매물이 오히려 줄고 있다.
일각에선 설 연휴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따른 제약을 완화해줄지도 관심이다. 정부는 세입자의 잔여 임차 기간을 보장하고, 매수인의 실거주 의무 적용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지금은 집을 팔고 싶은 사람도, 사고 싶은 사람도 제약이 많다”며 “정책 목표가 집값 안정이라면 거래 활성화라는 보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임근호/오유림/손주형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