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제조업의 시간

입력 2026-02-05 17:53
수정 2026-02-06 00:20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2026 국가방위전략’(NDS)에서 한국은 모범 사례로 등장한다. 동맹국이 각자의 안보를 책임지도록 돈을 더 쓰라는 게 주된 내용의 NDS에서 한국을 ‘우등생’으로 거론한 것이다. NDS는 한국에 대해 강력한 군사력, 많은 국방비, 탄탄한 방위산업을 보유한 국가로 평가했다.

이런 한국이 북한과 중국에 대해 군사적 역할을 해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을 ‘탄탄한 방위산업(robust defense industry)’ 국가로 적시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세계 최강 해군력에도 불구하고 새 군함과 잠수함을 건조하고 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미국의 제조업 붕괴상황과 대비돼서다. 질적 기준으로 세계 1위의 조선 경쟁력을 보유한 동시에 유럽과 중동, 아시아, 남미 등에 자주포, 전투기, 잠수함까지 수출하는 한국의 방산 역량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엿보인다. 모든 제조업 거느린 한국한국은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을 갖추고 있다. 이런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조선과 방산 외에도 인공지능(AI) 붐으로 절박해진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선 반도체와 전력망이 필수적인데, 여기에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효성중공업, LS전선, 고려아연 등이 포진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인 전기차와 로봇 분야에는 현대자동차그룹 회사들이 글로벌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미래 전력을 책임질 것으로 예상되는 태양광과 소형모듈원전(SMR)에서도 한화 OCI와 두산에너빌리티, GS에너지, SK이노베이션, 삼성물산 등이 생태계를 구축해 놨다. 최근엔 K웨이브를 타고 화장품 식품 의류 문구류까지 주목받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소프트웨어를 진일보시킨 시기였다면, 이제는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물리적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할 때가 찾아왔다. 고품질 제품을 단기간에 대량 생산해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제조회사가 절실해졌다는 얘기다. 공장을 갖췄다고 모든 회사나 국가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장에서 자동화로 찍어내기 힘든 변압기 등 전력기기가 본보기다. 10년 이상의 숙련공이 ‘한 땀 한 땀’ 코일을 감아 제조한다. 온전한 기술 기반이다. HD현대일렉트릭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40%에 가까운 이유다. 한국엔 이런 전력기기 회사가 네 곳이나 있으며 모두 세계에서 뛰고 있다. 더 뛸 수 있는 환경 만들어줘야한국 증시가 작년부터 하루건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000조원을 찍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이미 유럽의 어느 기업보다 커졌다. 반도체 장비의 ‘슈퍼을(乙)’이라는 ASML도 삼성전자 시총의 60% 수준이며,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는 영국 HSBC를 넘어섰다.

이런 글로벌 제조기업을 보유한 한국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진다. 투자와 고용의 부담을 짊어지면서도 공장을 이전하라는 압박과 그만 일하라는 근로시간 협박을 수시로 받고 있다.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수백조원의 무모해 보이는 투자를 결정할 때도 배임죄에 걸려 감옥에 갈 리스크를 져야 한다. 코로나19 이전 6만3000달러이던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GDP)은 규제 없는 실리콘밸리를 통해 지난해 9만달러로 뛰었다. 찾아온 ‘한국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