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아직도 100년 전 개츠비의 꿈을 팔고 있다네!

입력 2026-02-05 16:32
수정 2026-02-06 02:15
지난여름 뉴욕 한 달 살기를 하며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 가운데 가장 친숙한 작품이었다. 여러 번 읽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뉴욕에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문장 속 장소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일까. 소설 속 장소를 따라 걸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본 뉴욕이 여기 있다.


센트럴 파크 안으로 걸어 들어오니, 거리의 소음이 놀랍도록 잦아들었다. 7월의 뜨거운 열기도 동시에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나무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위대한 개츠비>(문학동네)를 펼쳤다. 책 위로 나뭇잎 사이로 드리워진 햇살이 영롱하게 흔들렸다. 그늘 바깥은 더웠지만, 안에서라면 온종일 벤치에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넘게 읽었지만, 센트럴 파크가 나오는 문장이 두드러져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플라자호텔을 떠나 관광용 마차를 타고 삼십 분에 걸쳐 센트럴 파크를 달리는 사이’. 가까워지는 남녀 사이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소설이 쓰인 1920년대에 관광용 마차가 센트럴 파크를 달렸다. 100년 후, 2025년에도 여전히 관광용 마차가 달린다. 화려한 장식의 마차는 센트럴 파크를 둘러보는 가장 낭만적인 방법이라고 여행객을 유혹한다. 직접 와서 보니 두 사람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하는 장면에 관광용 마차를 배치한 것은 작가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센트럴 파크가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만 같은 오래된 풍경이었다. 변하지 않는 장면 덕분에 뉴욕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본다. 뉴욕 풍경을 보여주는 소설 속 문장이 100년의 시차를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위대한 개츠비>가 출간된 1925년은 스콧 피츠제럴드가 스물아홉 되는 해였다. 소설의 화자 닉 캐러웨이도 스콧 피츠제럴드처럼 미국 중서부 출신으로 서른을 앞두고 있다. 닉은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증권계에 몸담기 위해 동부로 간다. 초라한 중서부가 아니라 세계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동부로 가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자 했다. 그의 심리가 뉴욕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겨 있다.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 밤이면 역동적이고 모험적인 분위기로 충만한, 남자와 여자,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며 눈을 어지럽히는 이 도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20대 젊은이의 눈에 비친 도시 뉴욕은 사랑할 만한 장소다. 나는 이질감 없이 이 문장에 동의할 수 있었다. 나의 눈에도 뉴욕의 밤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모험적인 분위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닉의 눈에 담긴 1920년대 뉴욕은 ‘광란의 시대’라고 불린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전후 복구로 정체되는 동안 미국은 세계 경제 중심지로 떠오른다.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하게 부를 쌓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인물들이다. 기회와 가능성의 도시 뉴욕으로 이민자들이 유입된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으면서. 닉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 닉 앞에 개츠비가 나타난다. 화려한 파티를 여는 거대한 저택을 소유한 개츠비가 닉의 눈에는 꿈을 이룬 인물로 보이지 않았을까? 닉이 보기에 개츠비는 희망을 품는 능력 자체가 재능인 인물이다. 자신의 희망에 인생을 건 사람, 개츠비. 그의 낭만적 인생관은 과거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는 그가 꿈꾸는 환상의 실체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사람을 잊지 못하지 않나. 데이지는 개츠비가 만난 최초의 상류층 여성이었다. 데이지가 속한 세계에 자신도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개츠비 안에서 자라났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지만, 개츠비가 전쟁에 참전하고 없는 5년 사이 데이지는 자질과 신분이 보장된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개츠비는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는다. 그가 사들인 저택 건너편에 보이는 데이지의 집. 그곳에서 반짝이는 초록 불빛을 향해 손을 뻗는 개츠비. 초록 불빛에 닿고 싶어 하지만, 그는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소설의 절정은 여름의 절정과 맞물린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는 때에, 변덕스러운 데이지는 권태에 못 이겨 뉴욕 시내로 가자고 일행에게 제안한다. 데이지의 남편 톰이 앞장선다. “센트럴 파크 남쪽, 플라자호텔 앞까지 나를 따라와.” 데이지의 친구 조던과 닉, 개츠비도 뉴욕으로 향한다. 흥청망청 취해 있는 시대, 쾌락과 욕망이 포효하는 재즈 시대, 즉흥적이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느새 우리는 플라자호텔 스위트룸을 잡는다는, 조금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닉의 내키지 않는 심정을 플라자호텔을 실제로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도시의 명소로 위엄을 과시하는 플라자호텔 계단 위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금빛 테두리를 두른 문 안팎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문지기가 엄숙하게 서 있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장소로 플라자호텔 스위트룸은 과잉 그 자체였다.

단지 소설 속 장소를 본다는 이유로 플라자호텔 스위트룸을 잡기에는 무리여서 나는 음료 한잔을 마실 생각으로 더 팜코트로 향했다. 이름처럼 야자수(palm)가 길게 늘어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예약 없이 간 오후의 팜코트는 거의 만석이었다. 마치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근사하게 차려입고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바(Bar)에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겨우 하나 남아 있었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칵테일을 주문하기로 했다. 데이지가 주문한 ‘민트 줄렙’을 찾았으나 메뉴판에 보이지 않았다.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익숙한 상그리아를 주문했다.

흥겹게 얘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책을 꺼내기가 조금 민망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위대한 개츠비>를 펼쳤다. 플라자호텔에서 톰과 개츠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극적인 장면을. 개츠비는 톰 앞에서 데이지에게 요구한다. 톰을 사랑한 적 없다, 말하라고. 그럼 잃어버린 5년을 되돌릴 수 있다고. “그냥 그에게 사랑한 적 없다고. 그럼 모든 게 지워지는 거야. 영원히.” 데이지는 개츠비의 요구가 버겁다. “아,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원해!” 과거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개츠비의 믿음이 데이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당신을 사랑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지나가 버린 일을 어쩌라는 거야….”


플라자호텔을 나온 나는 퀸스버러 다리까지 걸었다. 석양이 등 뒤에서 비추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거리에서는 이민자 배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소설 속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뉴욕도 여전히 꿈과 갈등이 뒤섞인 장소였다. ‘퀸스버러 다리 위에서 보이는 뉴욕은 언제나 처음 보는 도시다. 세상의 모든 신비와 아름다움, 그것에 대한 최초의 담대한 예언처럼 느껴진다.’ 뉴욕은 꿈이다. 모든 환상과 환멸이 압축되어 있으므로. 100년 전 개츠비의 꿈이 여전히 이 도시의 공기 속에 떠다니고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도시, 뉴욕. 그곳에 나의 여름도 함께 두고 왔다.

김성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