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지도 모를 커피를 위해, 얼굴을 기록하다 [설지연의 독설(讀說)]

입력 2026-02-11 12:46
수정 2026-02-11 14:50

커피와 책은 떼어놓기 힘든 짝꿍이다. 한 잔의 커피가 생각을 깨우고, 한 권의 책이 질문을 남긴다. 이 두 가지를 오래 곁에 둔 사람에게서 종종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한국 스페셜티 커피 1세대로 꼽히는 ‘커피 리브레’의 서필훈 대표가 그렇다. 커피 기업 대표이면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저자이면서 애서가다. 커피를 팔지만 동시에 커피에 관한 책을 만들고, 커피를 매개로 한 이야기를 축적해왔다.

출발은 서울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이었다. 프랜차이즈와 믹스커피 중심이던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커피 시장에서, 원두의 품질과 로스팅, 핸드드립 커피에 집중하는 스페셜티 커피는 아직 낯선 개념이었다. 월세 30만원, 한참 쇠락한 시장에 별다른 인테리어도 없이 작은 카페를 열었다. 커피 리브레 1호점은 커피 맛 하나로 입소문이 났고, 지금은 국내에 네 개 매장을 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커피의 맛을 파고든 ‘덕질’은 자연스럽게 그 근원으로 향했다. 토양과 산지, 생산자와 노동자의 얼굴까지. 그렇게 커피로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최근 인터뷰집 <공전미래>를 펴냈다. 커피를 통해 일과 관계, 지속 가능성을 묻는 사람. 서 대표를 서울 연남동 커피 리브레 파란점에서 만났다.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그리고 그 이후▶ 커피 일에 뛰어드신 지 얼마나 됐습니까.

“커피를 시작한 지는 22년 정도 됐고, 커피 리브레는 2009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올해로 18년째네요.”

▶ 고려대 서양사학과를 나와 쿠바 여성사로 석사까지 밟으셨다는 이력도 인상적입니다. 명문대 대학원을 그만두고 커피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안정적인 길에서 벗어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저는 오히려 획일적인 삶이 두려웠어요. 하고 싶은 일을 못 한 채 정해진 틀에 갇혀 사는 상황이요. 그게 두렵기 때문에 커피로 도망친 거죠.”

▶ 커피를 좋아하는 방식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회사를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울 안암동에 있던 카페 ‘보헤미안’에서 커피를 만나고는 핸드드립 장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당시 서구권에서 확산하던 스페셜티 커피의 사고방식에 깊이 공감하게 됐어요. 추출만큼 로스팅이 중요하고, 로스팅 이전의 원재료와 산지의 품질, 생산자와의 관계가 결국 맛을 좌우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커피를 하나의 요리 과정으로 본다면 그 앞단을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러면서 시야가 더 넓어졌습니다.”


▶ 커피 리브레는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다고 보십니까. 2020년 직접 쓰신 책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에는 적자 이야기도 여러 차례 나오는데,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졌나요.

“솔직히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23~2024년은 적자였고, 지난해(2025년)도 손익분기점 수준으로 보고 있어요. 창립 이래 줄곧 적자만 낸 건 아니고 흑자와 적자를 오가는 흐름을 반복해 왔습니다. 작년 매출은 약 250억 원 정도인데, 여전히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것 같네요.”

▶ 그런데도 회사가 잘 유지되고 있네요. (웃음) 외부 투자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저도 늘 궁금합니다. (웃음) 외부 투자는 받지 않았고, 제안이 와도 계속 거절해왔어요. 투자금을 돌려줄 만큼의 이익을 내고 있지 않기도 하고, 투자를 받으면 경영에 좀 휘둘릴 것 같아서요.”

▶ 창업 당시 모토가 ‘우린 아마 잘 안될 거야’였다면서요? 커피 사업이 '매일 실패하더라도 30년쯤은 매일 희망해볼 수 있는 삶'이라고도 하셨던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나 성공·실패의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커피를 정말 좋아했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하고 싶었어요. 그걸 지속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스페셜티 커피는 와인의 길을 따르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와인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커피는 오랫동안 잠을 깨우는 음료로 소비돼 왔지만, 스페셜티 커피가 확산하면서 맛과 품질을 설명하고 거래할 체계가 필요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잘 정립된 모델이 와인이었죠.

와인은 품질 평가부터 유통, 마케팅까지 오랜 시간 축적된 시스템이 있지만, 커피는 그런 토양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와인의 평가 방식과 유통·브랜딩 시스템을 많이 가져왔고, 생산자·품종·가공 방식을 공개하는 ‘트레이서빌리티’가 중요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어디서 온 커피인지 모르고 마셨다면, 이제는 커피에도 정체성이 생긴 셈입니다. 저는 그걸 ‘커피의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 커피 리브레의 슬로건도 ‘얼굴 있는 커피’입니다. 4000원짜리 커피 속에 숨겨진 ‘40원의 주인공’, 즉 생산자와 노동자들의 얼굴을 복원하겠다고 해왔는데요. 왜 이런 철학을 갖게 됐습니까.

“커피를 맛으로 즐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맛이 어디서 오는지 묻게 됐습니다. 추출이나 로스팅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생산자가 어떤 생각과 방식으로 커피를 길렀는지가 품질을 좌우하더군요.

그래서 농부부터 가공·운송 노동자, 로스터와 바리스타까지 커피의 전 과정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소비자 역시 커피의 출처와 맥락을 알고 마신다면 더 의미 있고 신뢰할 수 있겠죠. 그 얼굴들을 드러내는 일이 제가 커피를 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 커피 맛을 파고들다 보니 그 맛을 만든 토양과 생산자까지 관심이 확장된 거군요.

“맞습니다. 와인이 같은 품종, 같은 지역에서도 1급 재배지와 2급 재배지가 갈리고, 그 이유도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커피도 그렇습니다. 커피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 중에서 맛과 관련된 화학 성분이 가장 많은 작물입니다. 그다음이 다크 초콜릿, 레드 와인이에요. 현재 밝혀진 것만 해도 천여 종이 넘고, 해마다 더 발견됩니다. 그만큼 맛의 잠재력이 크고, 굉장히 섬세한 작물이죠.

다만 와인처럼 빈티지는 없습니다. 씨앗이기 때문에 숨을 쉬고, 시간이 지나면 성분이 소모돼요. 1년 안에 마셔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까다롭습니다. 니카라과에서 커피 농장을 11년째 운영 중인데, 이론과 현실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껴요. 결국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절실하게 알게 됐죠.”


▶ 니카라과 농장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직접 생산자가 되어보니 달라진 시선도 있나요?
“커피 리브레가 직접 농장을 매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지에는 농업 인력과 품질 관리팀, 상주 매니저가 있고 수확기마다 인력을 추가로 고용합니다. 생산한 커피는 직접 들여오기도 하고, 미국·중국·싱가포르·일본 등으로 수출도 합니다.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는 흔히 ‘시드 투 컵(seed to cup·커피나무의 씨앗에서 한잔의 커피로)’을 말하지만, 샘플을 받아 커핑하고 구매하는 걸 과연 ‘시드’라고 할 수 있을지 늘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직접 해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해보니 전혀 다른 세계더군요. 농업은 자연의 변수에 크게 좌우됩니다. 11개월을 잘 버텨도 마지막에 태풍, 기후 변화 한 번이면 모든 게 무너집니다.

1년에 한 번 수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생산자들이 그런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살아간다는 게 상상 이상이었어요. 사무실에서 하는 비즈니스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농장은 11년째 적자지만 배우는 건 많습니다. (웃음)”

▶ 1년에 3분의 1을 해외 커피 산지에서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농장주와 관계를 맺으며 깨달은 ‘비즈니스 매너’나 ‘관계의 기술’이 있다면요.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중요하다고 여겨온 기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바이어라는 이유로 ‘갑’처럼 행동하거나,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하대하는 태도는 결국 비즈니스에도 손해입니다.

상대도 사람입니다. 가격을 과도하게 깎거나 계약 후 선적 직전에 조건을 바꾸는 건 어디서든 매너가 아니죠. 산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비즈니스에서도 황금률, 즉 내가 대접받고 싶은 방식으로 상대를 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 커피를 제시된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사 오는 경우도 많다고 쓰셨던데요. 공정무역이라는 기준도 있는 걸로 아는데, 굳이 그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정무역 커피는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출발했고, 여러 기관이 정한 ‘공정 가격’을 지키면 인증 마크를 받는 구조입니다. 그동안 공정무역이 만들어낸 성과는 분명 크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장에서 생산자들을 만나보면, 그 가격이 실제로는 충분히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커피는 오랫동안 국제 상품거래소 가격을 기준으로 거래돼 왔는데, 이 가격은 수십 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습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생산자가 버티기 어려운 구조죠. 공정무역 가격은 이를 보완하려는 시도였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다른 방식입니다. 품질을 기준으로 생산자와 직접 협상해 가격을 정하죠. 그래서 대부분 공정무역 기준보다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2024년에 구매한 생두의 평균 가격은 공정무역 기준가보다 약 50% 높았습니다. 공정무역 가격이 파운드당 약 2.35달러였을 때, 저희 평균 구매가는 3.5달러 수준이었죠. 커머셜 커피가 대량 거래와 가격 중심이라면, 스페셜티 커피는 품질에 맞는 가격을 지불하는 구조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에는 산지에서의 다이렉트 트레이드가 주는 감동도 담겼지만, 늘 좋은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닐 것 같습니다. 가장 뼈아픈 실패나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까.

“그 이야기만 모아도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거예요. ‘커피를 싫어할 때 생기는 일’ 같은 제목으로요. (웃음) 재작년에는 에티오피아에서 들여오던 커피 한 컨테이너가 운송 중 후티 반군의 미사일을 맞아 전손 처리된 적도 있었어요. 뉴스로는 봤지만, 제 커피가 실려 있는 줄은 몰랐죠. 약 2억원어치가 그대로 날아갔죠. 화를 낼 대상도 없더군요. 그해 마침 1억원 적자가 났는데, 그 일이 없었으면 1억원 흑자였을 겁니다. (웃음)

산지에서 주문한 것과 다른 커피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수일 때도 있지만, 악의적인 경우도 있죠. 그런 순간에는 역시 실망감이 큽니다.”사라질지도 모를 커피를 위하여▶ 지난해 말 커피 리브레가 펴낸 책 <공전미래>에선 말씀하신 니카라과를 비롯해 에티오피아, 페루, 일본, 베트남, 온두라스 등에서 만난 다양한 '커피의 얼굴들'을 인터뷰하셨습니다. 그런데 커피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토종닭 농장, 퀵서비스 기사, 동물병원 수의사까지 등장하던데요.


“커피를 둘러싼 밸류체인을 일상의 영역까지 확장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연결돼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도 생길 수 있고요.

퀵서비스 기사, 수의사처럼 커피와 무관해 보이는 직업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촘촘히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도 생기죠. 스스로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한다고 여겨온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멋진 사람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하고 쓴 책은 아니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 나아가 지속 가능성에 관심 있는 독자들, 인터뷰 형식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많은 독자를 상정하기보다는,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닿기를 바랐습니다.”

▶ 생산자가 자신의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고, 소비자 역시 자신의 소비가 지닌 힘과 가치를 인식하도록 잇는 ‘쌍방향 메신저’가 대표님이 생각하는 소통이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이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품질이나 가격, 생산량과 다양성 어느 것도 지킬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성은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요소가 함께 작동하는 개념이죠.

수익이 나지 않다 보니 커피 산지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떠납니다. 부모 세대가 평생 고생해도 버티기 어려운 걸 보고 농사를 잇지 않으려는 건 우리 농촌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산 인구가 줄면 산지는 사라지고, 생산량과 다양성도 함께 줄어듭니다.

커피는 기후 변화에도 매우 민감한 작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 가능성이 무너지면 결국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에, 더 단조로운 커피를 마시게 됩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는 거죠.”

▶ 이 책은 ‘커피의 멸종’이라는 비극적 전망에서 출발합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기후 위기의 징후는 어느 정도로 심각합니까.

“정말 심각합니다. 대도시에선 체감하기 어렵지만, 농업 현장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과 재배지가 대구에서 강원도로 올라가고 있잖아요. 작물이 어디서 자라느냐는 생계의 문제죠.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적인 연구들조차 25년 뒤엔 현재 커피 재배 면적의 절반 이상이 부적합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커피 수요는 계속 늘고 있죠. 커피는 열대 고지대에서만 자라는데 그런 조건의 땅은 많지 않습니다. 산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도 기후예요. 커피는 건기와 우기가 분명해야 수확과 건조가 가능한데, 이제는 비가 제때 오지 않습니다. 자연 보호의 필요성엔 모두 공감하지만, ‘내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질문 앞에선 막상 무력감이 들기도 하죠. 그 간극이 큰 고민입니다.”

▶ 책에도 그런 고민이 담겼지만, 기후변화로 ‘커피 벨트’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일반 소비자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종이컵을 덜 쓰고 쓰레기를 줄이는 실천은 분명 중요합니다. 다만 저는 그 자체의 효과보다도 ‘마인드 셋을 바꾸는 힘’이 더 크다고 봐요. 실제로 탄소 배출의 대부분은 선진국과 특정 산업에서 발생하고, 개인의 선택만으로 바꾸기엔 한계가 분명하거든요.

예를 들어 비행기 탄소 배출도, 자주 비행기를 타는 상위 1%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렇다고 일반 사람들이 1년에 한두 번 여행을 간다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건 해법이 아니죠. 중요한 건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인식이 바뀌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 정책과 시장의 변화를 지지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국가와 국제 차원의 제어에서 나오겠지만, 그 출발점은 이런 태도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을 안 쓰는 것보다 환경에 덜 해로운 혁신적 소재 개발에 투자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작은 실천’들이 다소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그런 연구와 개발도 결국은 소비자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대체 소재는 이미 많이 개발돼 있지만, 비싸거나 성능이 떨어져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요가 없으면 기업도 더 투자하지 않죠. 이런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야 기업이 대량 생산에 나서고, 품질을 개선하며 가격을 낮추는 경쟁이 생깁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소비자의 선택과 기업의 투자가 함께 맞물려야 구조가 바뀐다고 봅니다.”

▶ 커피 산업이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다음 세대, 이른바 ‘넥스트 스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도 아직 답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이 위기라는 점이에요. 저는 자식이 없지만, 만약 제 아이가 ‘아빠, 나중에 커피 일을 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라고 할 것 같아요. 그만큼 상황이 어렵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만의 문제가 아니라 커피 산업 전체의 생존이 걸려 있습니다. 보수적으로 봐도 30년 뒤, 길게 보면 50년 뒤에는 현재 커피 재배지의 98%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커피 비즈니스의 미래를 말하는 게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또 하나의 문제는 품종입니다. 전 세계 커피가 소수의 품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전염병에 매우 취약합니다. 그런 점에서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는 중요합니다. 3000종이 넘는 품종이 남아 있고, 그 안에는 기후 변화나 질병에 더 강한 가능성도 있겠죠. 그래서 에티오피아를 ‘기원이자 미래’라고 말합니다. 다만 이것 역시 해답이라기보다는, 얼마나 진지하게 가능성을 탐색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커피 리브레는 커피 업계 최초로 비콥 인증(B Corp, 사회·환경적 책임과 투명성을 충족한 기업에 부여되는 국제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이 충돌할 때,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십니까.

“충돌하는 지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선 당장 해야 할 일이라도, 기업의 재무 상황이나 시장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미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해보자’는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모든 걸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비콥 인증이나 지속 가능성 메시지를 가진 기업에 대해 한국 시장이 아직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단계는 아닙니다. 인증이 있다고 해서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 적도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이걸로 무언가를 얻겠다는 기대보다는, 내부적인 원칙과 출발선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 대표님의 철학을 읽으며 ‘직원들 입장에서는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웃음) 커피를 비싸게 사 오는 일부터 산지 기부, 농장 인근 학교 지원까지 이윤과는 거리가 있는 선택들이 많은데, 직원들은 잘 공감하고 따라와 주나요.

“부담이 없을 수는 없죠. 지난해에만 산지에 현금으로 약 6000만원을 기부했는데, 직원들 입장에선 ‘그럴 바엔 월급을 올려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웃음) 다만 그게 우리 회사의 운영 원칙에 가깝다는 점은 계속 공유해왔어요. 직원이 50명 정도 되는데 모두가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회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이해하고 함께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 커피 리브레를 ‘커피를 매개로 한 미디어 사업’이라고 표현하신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미디어라고 보셨습니까.

“미디어는 결국 ‘매개체’라는 뜻이잖아요. 저희가 하는 일도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신문이나 TV처럼 각기 다른 미디어가 있듯, 저희에게는 커피가 하나의 채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희는 NGO나 사회적 기업이 아닌 영리 기업입니다. 결국 수익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방식이 유효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 커피는 판매 상품이면서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이 커피에 우리의 철학을 얼마나 잘 담아 전달하느냐, 그 의미에서 커피리브레는 미디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 아시아나항공 비즈니스석에 커피를 납품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협업해보고 싶은 기업이나 업종이 있을까요.

“특별히 염두에 둔 곳은 없습니다. 다만 지속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곳들과의 협업이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연남동의 ‘얼스어스(Earth Us)’는 일회용품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도 잘 운영되는 카페인데, 저희 커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곳과의 협업 과정에서 포장용 테이프를 재활용·생분해 소재로 바꾸는 시도도 했는데, 비용과 품질 문제로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그래도 수요가 생기니 점점 더 나은 대안이 나오더군요. 이런 변화가 가능해지는 게 협업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커피 덕후'가 책을 사랑할 때
▶ 커피 회사가 출판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낸 책은 몇 권인가요.

“예전에는 제대로 읽을 만한 커피 책이 거의 없다고 느꼈어요. 해외에는 좋은 책이 많은데, 매년 한 권씩이라도 번역해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출판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번역서 위주로 약 10권을 냈고, 현재도 두 권을 감수 중입니다. 전담 번역 인력도 있고요.

번역서 외에 협업 작업도 했습니다. 커피 애호가인 김영하 작가와는 <여행의 이유> 개정판을 커피 리브레 버전으로 제작했는데, 내용은 그대로 두고 디자인과 패키지를 새로 구성했습니다. 김 작가가 직접 고른 커피를 함께 선보이기도 했죠.”

▶ 커피 사업도 그렇지만, 책 역시 ‘더 많은 커피 책을 읽고 싶은데, 없으니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플렉스’ 아닌가요.

“책도 내는 족족 적자입니다. (웃음) 그래서 1년에 한 권씩만 냅니다. 직원들 걱정도 많죠. 출판만 그런 게 아니라 비슷한 일을 정말 많이 벌여왔어요. 홈페이지에 해외 커피 논문을 번역·요약해 아카이브를 만들어왔는데, 벌써 1000편이 넘습니다. 상업적인 커피 회사가 운영하는 아카이브로는 아마 세계 최대 규모일 거예요. 돈은 전혀 안 됩니다. 업계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 커피를 꿈꾸는 소수만 보겠죠. 그래도 조회 수가 100만 나와도 저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 커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커피 리브레 사이트를 하나의 공부 창구로 삼아도 좋겠네요.

“그게 제 희망입니다. 책을 낼 때도 생두부터 로스팅,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 커피 바잉까지 커피의 전 과정을 다뤘어요. 중간에는 커피와 와인을 함께 다룬 책도 있었고요. 커피에 관심이 있다면 저희 콘텐츠를 통해 웬만한 과정은 빠짐없이 접할 수 있을 겁니다.”

▶ ‘커피 덕질’만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죠. 먹을 수 있고, 맛있고, 제가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점까지요. 무엇보다 커피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연결돼 있습니다. 생산자와 유통, 소비자까지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들을 직접 만나며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또 커피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빈곤과 환경 문제, 유통 구조, 품질을 어떻게 더 끌어올릴 것인가, 브랜드의 철학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까지요. 그런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 자체가 저에게는 가장 큰 재미입니다.”

▶ 흔히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들 하지만, 대표님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계십니다. 실제로 해보니 어떻습니까. 책에선 “좋아하는 일의 본질은 즐거운 순간뿐 아니라 그 과정의 희로애락과 원치 않는 결과까지 책임지는 데 있다”고 쓰셨던데요.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좋아서 시작했다가 알게 될수록 실망하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아직 커피 자체를 정말 좋아합니다.

지금도 가장 즐거운 건 커피 관련 논문이나 자료를 보는 일이에요. 커피는 추출과 로스팅, 재배 방식부터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죠. 식품영양학과 농업, 자본주의와 인류학까지 이어지고요. 그 모든 게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 책도 무척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퇴근하면 집에 가서 씻고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보는 게 일상이에요. 장르는 가리지 않습니다. 소설부터 역사·사회과학, 양자역학이나 천체물리 같은 과학서까지 두루 읽어요. 종교도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관심이 많고요. 최근에는 동유럽 작가들의 책에 끌리던 참이에요. 출장 때 루마니아 작가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의 <멜랑콜리아>와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를 가져갔는데, 너무 피곤해서 거의 못 읽었네요.”

▶ ‘인생 책’을 한 권 꼽아주신다면요.


“고등학교 때 읽은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입니다. 요즘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더 알려져 있죠. 감성과 이성처럼 상반된 성질을 지닌 두 인물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이야기인데, 제게는 큰 위로가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굉장히 내성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리는 면이 공존한다고 느꼈거든요. 공부와 책을 좋아하면서도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보이기도 했고요. 그 책을 통해 그런 양면성이 결함이 아니라, 잘 조율하면 함께 갈 수 있는 성질이라는 걸 처음 받아들였습니다. 제 안의 서로 다른 면들을 없애기보다 균형을 잡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입니다.”

▶ <공전미래>를 읽을 때 함께 마시면 좋은 커피를 추천해주신다면요.

“책에 등장하는 생산자들이 만든 커피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코쿠아, 페루 차크라 커피 같은 생산자들의 커피죠. 인터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커피를 함께 마시며 책을 읽는다면, 이야기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라면 충분히 특별하겠죠.”

■ 서필훈 대표의 추천 책




1. <토성의 고리> | W. G. 제발트- 제발트는 폐허와 잔해, 기록을 통해 부귀영화와 상흔, 숨죽여 울던 '보잘것없는 사람들', 이름도 없이 죽어간 그 사람들을 망각의 가에서 글로 건져 올린다. 보이지 않아도 잊지는 않겠다는 듯이. 초혼.

2.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윌리엄 포크너- 15명의 화자가 만들어내는 잔혹하고 아름다운 장례 여정의 콜라주. 기괴하고 처연하다.

3. <길 잃기 안내서> | 리베카 솔닛- 리베카는 파란색, 상실, 사이, 떠남, 변화에 대해 말하는데 언제나 길을 잃어야 가닿을 수 있는 것들이다.

4.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 메이- 투병일기가 아니다. 아픈 주체와 고통이라는 영토를 발굴한다. 심지어 새로운 글쓰기 장르도 개척한다. 글은 너무 아픈데 문장은 초연하게 아름답다. 다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을 연상시킨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그날>

5. <메마른 삶> |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짧고 격정적이며 강렬한 소설. 등장인물의 시점에 따른 여러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 반려동물 있는 사람은 두 배로 슬플 거다.

6. <기묘한 이야기들> | 올가 토카르추크- 인간과 자연, 자아와 타자, 현실과 허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현실의 공고함을 상대화시켜 허물고 있다. 기존의 안전한, 당연시했던, 우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의 경계가 기묘한 것들에 의해 끊임없이 침윤된다.

7.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누가 괴물인가? 우리와 괴물의 성장소설.

8.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 유디트 샬란스티- 세상이 상실한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한다. 모래처럼 흩어지는 부재를 간신히 붙잡고 보니, 비로소 그것들을 잃어버린 우리가 보이는 마법.

9.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 요안나 콘세이요- 사무실 책사에 다리 올리고 읽다가 정자세로 고쳐 앉아 숭배하듯 읽었다. 짧은 글과 그림으로 그 어떤 작품보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10. <우울한 열정>(절판) | 수전 손택-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광기와 우울함에 사로잡힌 천재들의 이야기로 정상성을 되묻는다. 우울해도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천재는 아니지만.
<i>'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i>

글=설지연/사진=문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