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MEGA'…최대 산유국 美, 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까지 통제

입력 2026-02-04 17:54
수정 2026-02-05 01:39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의 ‘슈퍼파워’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석유 채굴에 속도를 내는 데 이어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까지 확보하면서다.

3일(현지시간)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셰일오일 생산에 힘입어 2018년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오른 미국은 올해 석유, 천연가스를 하루 평균 2360만 배럴가량 생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루 2060만 배럴 정도인 미국 내 사용량을 뺀 300만 배럴은 수출될 전망이다.

미국의 산유량은 지난해 이미 세계 2, 3위인 사우디아라비아(1120만 배럴)와 러시아(1053만 배럴)를 합한 수준이었다. 여기에 미국이 통제권을 갖게 된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생산이 늘어나면 미국이 좌우할 수 있는 산유량은 하루 2700만 배럴로 증가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량(3370만 배럴)의 80%에 달하는 수치다. 지금도 석유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미국이 석유시장의 ‘슈퍼파워’가 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생산이 중단된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석유, 가스 등이 적잖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가자지구에서도 미국은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석유시장에서 미국의 입김이 더 커질 수 있다.해외 석유 장악 나선 美…트럼프, 마두로 체포 뒤 "석유 통제"
자원 풍부한 그린란드·加도 눈독…가자 지구엔 "미국이 장악할 것"
“내 에너지 정책은 최대 생산, 최대 번영, 최대 권력으로 정의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을 ‘국가 에너지 패권의 달’로 선포하며 이런 말을 했다. 집권 2기 들어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라며 “드릴, 베이비, 드릴(파고 또 파라)”이라고도 했다. 올초 베네수엘라에 개입해 석유 통제권을 확보하면서 세계 곳곳으로 에너지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다. ‘메가(MEGA·미국 에너지를 다시 위대하게)’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에너지 패권 강화하는 美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셰일오일 생산에 힘입어 2018년 기존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쳤다. 다만 미국의 석유 매장량은 550억~690억 배럴 수준으로 추정된다. 2위 산유국 사우디 석유 매장량(2672억 배럴)의 5분의 1 정도다. 게다가 미국 셰일오일 생산단가는 사우디 등의 석유 생산단가보다 높다.

미국은 외국의 석유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세계 석유 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3032억 배럴)를 비롯한 남미가 1차 타깃이다. 올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하고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베네수엘라는 20년간 이어온 석유 국유화 조치를 폐기했다. 미국 기업이 베네수엘라 석유사업을 할 길을 열어준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확보한 저가 중질유로 캐나다산 오일샌드 수입을 대체한다면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패권을 굳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은 미주대륙이 속한 서반구에 대해 “수많은 전략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각국 주재 미국대사관이 이를 파악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베네수엘라 외 다른 나라도 자원 개발 과정에 미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눈독을 들이는 그린란드,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고 싶다”고 한 캐나다, 한때 “미국이 장악하고 싶다”고 한 가자지구는 모두 석유, 가스 등이 풍부한 지역이다. 미국이 최대 압박을 가하고 있는 이란도 석유 매장량과 생산이 많은 나라다. 미국은 현재 이란에 항공모함 전단 등 군사 자산을 대거 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정부) 기관을 장악하라”고 선동하기도 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들 지역의 자원까지 통제하거나 입김을 행사하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석유시장에서 미국의 입지는 더 강화되고, 전통 강자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영향력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군사·외교수단까지 총동원미국은 석유, 가스 판매에도 적극적이다. 인도를 압박해 러시아 원유 구매를 중단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인도는 올초만 해도 하루 120만 배럴의 러시아 원유를 수입했다. 이 자리를 미국과 미국이 통제하는 베네수엘라 원유가 메꾸게 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있는 유럽에도 자국산 천연가스 수출을 늘리고 있다. 유럽은 내년부터 러시아 가스 수입을 완전 중단하기로 했다.

미국은 제재 대상인 이란과 러시아산 석유 유통 경로도 차단하고 있다. 인도, 오만 등에 국적을 둔 ‘그림자선단’은 공해상에서 제재 국가의 원유를 넘겨주는 방식으로 원산지를 위장해 수출한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관세는 법적 논쟁이 뒤따르지만, 에너지 통제는 지정학적 명분을 내세우기 때문에 법적 테두리 밖에서 더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동맹국에도 관세와 안보 협력을 무기로 미국 에너지 수입을 늘리도록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관세협상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를 연간 2500억달러씩 3년간 7500억달러어치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은 4년간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사기로 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대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