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사진)이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산 배분 허용 범위를 초과해도 국내 주식을 기계적으로 매도하는 ‘리밸런싱’을 유예한 것은 한시적 조치”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국내 증시 저평가가 해소되고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이 급등하는 시기에 리밸런싱이라는 제도적 제한 때문에 기대수익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중기 자산 배분을 논의하는 5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개선 방안과 재개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위는 지난달 26일 국내 주식 보유액이 목표치(14.9%)를 넘더라도 당분간 리밸런싱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확대를 요구해온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정부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고환율의 원인이 아니다”며 “해외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환시장이 안정되면 환헤지를 하지 않는 환오픈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김 이사장이 언론 인터뷰에 나선 건 지난해 12월 다시 취임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최근 10년간 외환 조달 최대였던 2020년 환율 1180원 불과
연금 해외 투자가 환율 올렸다는 건 실증적으로 안 맞아
“최근 10년간 국민연금이 가장 많은 외환을 조달한 해는 2020년인데 그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180원이었습니다. 가장 적었던 2024년 환율은 1364원이었죠.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환율 상승의 주요인이라는 건 실증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4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가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의 주원인이라는 외환당국 주장에 수치를 제시해 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장기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해외 투자 확대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시적으로 재개한 전략적 환헤지도 외환시장이 안정되면 중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연금이 증시 부양을 위해 리밸런싱을 유예했다는 비판에는 “수익률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한 한시적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두 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기금 규모가 커짐에 따라 국민연금이 투자 책임을 강화하고,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국내 주식 보유액이 목표 비율을 넘어가도 ‘리밸런싱’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국내 증시가 제일 좋은데 리밸런싱이란 ‘캡’ 때문에 팔면 손해를 보게 됩니다. 게다가 시장 변동성이 너무 크다 보니 몇 달 더 지켜보자는 판단이었습니다. 정부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추측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리밸런싱 유예 기간을 밝히지 않아 시장이 혼란스러워합니다.
“한국 시장의 저평가가 해소되는 국면에 있고,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며 수익이 급증하는 점을 감안해 상반기까지 한시적으로 내린 조치입니다. 국민연금은 단기 투자자가 아닙니다. 2017년 13~14개월이던 종목당 평균 보유 기간이 최근엔 2년으로 늘었습니다. 투자 기간이 길기 때문에 주가가 올랐다고 급하게 처분할 이유가 없습니다.”
▷환율 안정을 위해 해외 주식 목표 비중을 낮춘 것도 논란거리입니다.
“제가 국민연금 이사장에 처음 부임한 2017년 연평균 수익률이 4~6%였습니다. 최근 5년간은 8~10%까지 올랐죠. 이는 당시 약 7 대 3이던 국내와 해외 투자 비중을 4 대 6으로 바꾸는 등 자산 배분 전략을 변경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해외 주식 비중을 약간 줄이고, 국내 비중은 더 늘리지 않는 선에서 타협한 건 중기 자산 배분 전략의 큰 흐름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해외 투자 확대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는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외환당국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를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지난 10년간 국민연금의 외환 조달 규모가 가장 컸던 2020년 한 해 동안 252억달러(약 36조원)를 조달했습니다. 이때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180원이었습니다. 반면 외환 조달 규모가 112억달러로 가장 적었던 2024년 연말 환율은 1364원이었습니다. 환율 상승은 여러 가지 대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 국민연금 기금의 해외 투자 증가가 원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국민연금은 2018년부터 해외 투자 자산에 환헤지를 하지 않는 완전 환오픈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전략적 환헤지는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이 요동치고, 환율이 폭등했을 때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시적으로 마련한 제도입니다. 국민연금의 분명한 원칙은 장기 투자를 통해 환차익과 환차손 합을 제로(0)에 가깝게 만드는 ‘자연 환헤지’입니다. 기금운용지침의 외환관리 목표에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축소해야 한다. 대규모 환손실로부터 기금을 보호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명시돼 있습니다.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환오픈 전략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민연금의 상시적 환헤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요.
“최근 기금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 정도에서 최소 20~30년으로 늘어났습니다. 2~3년 내 자산을 팔아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산 매각 시기의 환율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투자할 때의 환율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몇십 년 후 해외 자산을 매각해야 할 때의 환율 이슈는 조금은 먼 얘기라고 봅니다. 뉴프레임워크에서 논의하고, 연구용역을 통해 결론이 나오면 국민연금도 다시 판단해 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뉴프레임워크의 취지는 뭔가요.
“2017년에는 기금이 1년에 몇십조 원씩 불어났지만 지금은 연간 증가액이 200조원을 훌쩍 넘습니다. 불어나는 자금의 60~70%를 해외에 투자하니 외화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금 규모가 우리나라 외환시장 규모에 비해 비대해지다 보니 시장에서 외화를 조달하면 어마어마한 환율 변동 요인이 됩니다. ‘새로운 해외 투자 전략이 필요한 때’라는 판단에서 시작한 게 뉴프레임워크입니다.”
▷취임사에서 운용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운용 규모 ‘글로벌 톱3’에 걸맞은 철학과 원칙으로 ‘유니버설 오너’, 즉 보편적 소유자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상장사 대부분의 1~2대 주주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와 기업을 책임지는 보편적 소유자로서 역할이 필요합니다. 국민연금의 첫 번째 임무는 수익률 제고지만 사회적 책임도 같이 추구해야 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 수익률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책임투자는 재무적 요소로 인정받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면 위기를 예방하고,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는 등 투자 위험 요인을 사전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회원 정보를 유출한 쿠팡 투자, MBK의 홈플러스 사태 등에서 보듯 국민연금도 투자에 대한 책임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독립성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독립성 논란에 관해서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투자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가 국민연금이라는 점은 확고한 원칙입니다. ‘정치·경제 권력은 기금 운용에 관여하지 말라. 국민연금은 우리 국민의 노후자금이다’라는 원칙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전북 전주에 금융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투자공사(KIC)와 각종 연기금·공제회 등이 전주로 모이면 자연스럽게 금융 생태계가 만들어집니다. 서울은 국제금융, 부산은 해양파생금융 중심도시라면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전주를 연기금 중심의 금융 중심지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 약력
△1964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2006년 전북도의회 의원
△2012~2016년 제19대 국회의원
△2017~2020년 제16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2020~2024년 제21대 국회의원
△2022~2024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간사
△2025년 12월~ 제19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남정민/정영효/민경진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