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부터 IT, AI, 미래 기술까지 ... 평소 접하기 어렵고 다소 재미없다 느껴졌던 '테크 세계' 뒷이야기를 친근하게 '썰 풀듯' 풀어주는 기자코너입니다. 평소 필자가 취재 현장을 뛰며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려요.
"채널값도 제대로 안 쳐주는데 왜 우리 방송을 틀어야 하죠?"
지금 유료방송에 채널을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케이블TV사업자(SO) 간 콘텐츠 사용대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LG헬로비전과 CJ ENM, 개별 사업자 간의 싸움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입니다.
막간 개념
PP는 방송사업자에 말 그대로 '채널'을 제공하는 업체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CJ ENM이 있죠.엠넷, tvN 등 채널을 유료방송에 일정 대가를 받고 제공합니다. SO는 흔히 말하는 '케이블TV사'입니다. LG헬로비전, 딜라이브 등이 있습니다.
PP업계와 SO업계의 싸움은 바로 이 '채널 대가' 때문에 이뤄졌습니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이 지급하던 채널 대가 산정 방식을 바꾸는 새 기준을 만들면서 시작됐죠.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와 한국방송채널사용사업자협회, PP협회는 지난 2일 공동 성명을 내고 “케이블TV 사업자들이 사전 협의 없이 콘텐츠 사용대가 산정 기준을 일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새 기준이 강행될 경우 작은 채널을 중심으로 콘텐츠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줄 돈 없다" VS "일방적 삭감"그럼 일부 케이블TV 사업자들이 제시한 새로운 콘텐츠 사용대가 산정안은 뭘까요. 바로 케이블TV 방송 매출 증감에 따라 PP에 지급하는 콘텐츠 사용료를 연동해 조정하는 방안입니다. 즉,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내고, 적게 벌면 그만큼 적게 콘텐츠 사용료를 주겠다는 거죠.
PP사업자들이 문제로 삼는 대목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SO업계가 제시한 '보정 옵션'입니다. 케이블TV업체들은 지급률이 IPTV 등 다른 유료방송 플랫폼의 평균보다 5% 이상 높을 경우 이를 강제로 낮추는 옵션을 새 안에 포함시켰습니다. SO 측은 IPTV 대비 과도하게 높은 콘텐츠 비용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SO업체와 PP들은 개별 협상을 통해 대가를 산정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상한선과 하한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채널을 ▲종합채널 ▲중소콘텐츠 ▲보도 ▲일반콘텐츠 4개 기준으로 나눈 뒤 각 채널이 '시청률'로 기여하는 바를 따져서 대가를 협상했죠.
이번 보정 옵션을 설정함으로써 SO업체들은 줄 수 있는 돈의 '상한선'을 자체적으로 정해버린 겁니다. 콘텐츠의 개별 가치가 아니라 IPTV와의 형평성을 근거로 대가를 재산정하겠다는 거죠. 한 마디로 말하면 '불공평하다'는 겁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SO가 사실상 개별 협상 체계를 포기하고 준(準)요율제를 도입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SO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왜냐면 정말 '줄 돈이 없어서'죠. 실제 SO업계는 지금 존폐 위기에 놓였습니다. IPTV와 계속 상황을 비교하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와 같은 IPTV 사업자들은 수신료 말고도 휴대폰·인터넷 결합상품, 마케팅 할인 등으로 계속 돈을 버는데, 유료방송은 돈 벌 방법이 없어 계속 수익이 악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 '나몰라라'에 갈등은 극단으로이번 갈등은 지난해 말 불거졌던 LG헬로비전과 CJ ENM 간 분쟁과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당시 갈등은 특정 대형 PP와 특정 SO 간의 개별 계약 문제였지만, 이번 사안은 케이블 업계 전반이 공통 기준을 앞세워 PP 전체를 상대로 구조적 조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훨씬 큽니다. 단순 ‘가격 분쟁’이 아니라 ‘룰 변경’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죠.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콘텐츠 사업자의 경쟁력 약화입니다. PP업계도 사실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한 이후 제작비는 점점 느는데 광고 매출은 줄어드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서죠. 이런 상황에서 케이블TV를 통해 확보하던 안정적인 수익마저 줄어들 경우, 중소 PP부터 제작 축소와 채널 폐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콘텐츠 투자 여력이 약화되면 플랫폼 경쟁력 역시 동반 하락할 수밖에 없죠.
정부도 난감합니다. 사실 SO와 PP 양측 모두 2021년부터 통일된 산정 기준 마련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민간 계약 영역”이라는 이유로 시장 자율에 맡겨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갈등은 정부의 방관이 더 이상 중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죠. 실제 한 업계 관계자는 “주파수 대가나 망 이용대가는 정부가 기준을 정하면서, 콘텐츠 사용료만 기업 간 자율에 맡기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각선 SO의 이번 ‘보정 옵션’ 도입이 정부의 개입을 부추기기 위한 조치라는 시각도 나옵니다. 정부가 콘텐츠 사용료에 대한 일관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자 이례적으로 민간 상한선을 지정하며 압박에 나섰다는 겁니다.
방미통위 입장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정부가 개입할 경우 위성방송과 IPTV 등 타 방송업계 간 가격 조정 등 갈등 국면에도 연쇄적으로 개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 자식에게 뭘 해 주면 다른 자식의 요구도 똑같이 들어줘야 한다"는 마음일 겁니다. 정부가 이번 갈등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시장을 두고 보는 게 더 리스크가 적다고 판단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콘텐츠 사용대가를 둘러싼 이번 충돌은 케이블TV의 생존 전략과 콘텐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정면으로 맞부딪힌 결과입니다.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손실은 특정 사업자가 아니라 한국 유료방송 생태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가 언제까지 ‘시장 자율’이라는 말 뒤에 머물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은 정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