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폭등했는데…"우리만 손해볼 판" 0원 계약에 '비명'

입력 2026-02-04 13:59
수정 2026-02-04 14:10

구리 가격이 역대급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구리를 뽑아내는 대가인 ‘제련 수수료’는 사실상 바닥을 치고 있다. 원재료인 구리 정광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제련소들이 ‘마이너스 계약’까지 감수하는 처지에 몰렸다.

4일 비철금속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구리 제련 수수료는 올 들어 t당 ‘0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2024년 t당 거래가 평균 80달러 선이었던 수수료가 지난해 20달러로 급락하더니, 최근에는 일부 계약에서 수수료가 아예 사라지거나 제련소가 오히려 비용을 지불하고 원석을 가져오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일차적 원인은 수급 불균형에 있다. 글로벌 주요 구리 광산들은 폐광이나 생산량 조절로 공급을 줄이고 있는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제련 설비는 지난 몇 년간 공격적으로 증설됐다. 구리 정광이라는 한정된 먹거리를 놓고 제련소 간의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갑인 광산 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수수료가 책정된 결과다.

반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구리 현물 가격은 폭등세다. 런던금속거래소(LME) 등에서 구리 가격은 공급 부족 우려와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수요 확대로 인해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2024년말 t당 8800달러 선에서 지난해말 1만1000달러 올랐고, 올들어 1만5000달러선까지 폭등했다.

다만 악조건 속에서도 LS MnM 등 주요 제련사들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고 있다. 비결은 구리를 제련할 때 함께 추출되는 금, 은, 백금, 팔라듐 등 귀금속에 있다. 최근 지정학적 불안으로 안전자산인 귀금속 가격이 폭등하면서, 본업인 구리 제련 수수료 수익보다 부산물 판매 수익이 압도적으로 커진 것이다. 이른바 ‘떡고물이 떡보다 커진’ 상황이다.

여기에 ‘프리메탈(Free Metal)’ 수익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제련 기술이 뛰어난 업체들은 광산과 계약한 회수율보다 더 많은 양의 구리를 뽑아낼 수 있는데, 이 초과분은 온전히 제련소의 이익으로 잡힌다.

업계 전문가들은 구리 제련 시장의 이 같은 역설적인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국 자원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신규 제련소를 계속 늘리고 있어, 원재료 확보를 위한 수수료 인하 경쟁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제련업은 단순 가공업을 넘어 희귀금속과 부산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수하느냐의 기술 전쟁으로 변모했다”고 분석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