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삼립 시화공장 화재 여파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계에 '번(버거 빵) 대란'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지만 공급 규모를 감안하면 다음 주부터는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4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가동이 중단된 SPC삼립 시화공장은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 생산동 가운데 생산라인이 있는 3층이 사실상 전소됐다. 3층 천장이 주저앉으면서 4층도 화재 피해를 입었고, 1~2층은 물류 자동화 창고로 생산 능력이 없는 곳으로 알려졌다. 업계 안팎에선 공장 재가동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시화공장이 햄버거 번 생산의 핵심 거점이라는 점이다. 이 공장은 하루 9만8300상자에 달하는 빵을 생산해 프랜차이즈와 마트, 편의점 등에 공급해왔다. 버거킹, 롯데리아, 맘스터치, KFC, 노브랜드버거 등 대부분의 브랜드가 SPC삼립의 번을 사용하고 있다. 일부 브랜드는 번 대부분을 SPC삼립에 의존하는 처지다. 업계에선 시장 점유율을 60%대로 추산하고 있다.
버거 업계는 인명사고로 시화공장 가동이 중단됐던 이후 공급망을 다각화해 당장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해 5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면서 해당 공장은 2주간 가동을 멈춘 바 있다.
당시 노브랜드버거는 직영점 5곳의 영업을 중단했고, 맘스터치도 직영점에서 배달 주문을 받지 않았다. 롯데리아와 버거킹 등도 일부 메뉴가 조기 품절되는 상황이 빚어졌다. 이후 프랜차이즈 업계는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자체 생산 물량 확보에도 나섰다.
롯데GRS는 계열사인 롯데웰푸드로부터 일부 물량을 공급받고 있으며, 노브랜드버거 운영사인 신세계푸드도 번 자체 생산 물량을 확보했다. 맘스터치도 공급처를 늘렸다. 다만 SPC삼립 의존도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버거킹의 경우 와퍼 번, 브리오슈 번 등 10여종을 전량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공급받고 있다.
일반 식자재와 달리 햄버거 번의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는 점도 번 대란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버거 번은 방부제 사용을 최소화하고, 프랜차이즈별 규격과 레시피에 맞춰 생산하기에 유통기한이 2~3일에 불과하다. 냉동 보관 시 해동 과정에서 빵의 식감과 수분감이 달라져 대부분 브랜드에서는 상온·냉장 유통을 고수한다.
대체 공급 역시 쉽지 않다. 번은 지름, 높이, 당도, 수분 함량 등 세부 규격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 다른 제빵사 제품을 즉시 투입하기 어렵다. 생산 능력을 갖춘 업체가 있더라도 테스트·품질 승인·물량 조정까지는 시일이 걸린다. 2~3일 정도라면 기존 재고로 버틸 수 있지만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부족한 물량을 즉각적으로 조달하기가 어려운 셈이다.
공급 재개 시점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는 안전 점검과 행정 절차에 따라 공장 가동 재개 시점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이번 화재는 설비 소실과 건물 안전성 문제까지 겹쳐 복구 기간을 예상하기 어렵다. SPC삼립의 다른 공장에서 대체 생산하더라도 공정과 규격이 다르므로 프랜차이즈가 요구하는 품질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한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한 차례 대란을 겪으면서 공급망을 다각화해 지난해보다는 준비된 상황"이라면서도 "SPC삼립의 물량이 여전히 많은 탓에 타 공급처에서 전부 흡수하기는 어렵다. 공백이 길어지면 일부 메뉴 축소, 영업시간 조정 등의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SPC삼립은 "햄버거 번 등 주요 제품은 성남, 대구 등 주요 거점 생산시설과 외부 파트너사 등을 통해 대체 생산할 방침"이라며 "거래처 납품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시흥=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