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휴스턴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 행사장. 미국 로봇 기업 웨스트우드 로보틱스의 키 1.6m, 몸무게 30㎏ 휴머노이드 로봇 ‘더미스’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한 손으로 빈 캔을 집어 들었다. 보행과 동시에 조작하는 동작은 균형 붕괴와 충돌 위험이 상존하는 영역이다. 웨스트우드 로보틱스는 초기 설계부터 실제 제작까지 전 과정을 다쏘시스템의 솔리드웍스 기반 설계·시뮬레이션 모델로 구현하고, 가상 공간에서 구조·하중·동작 시나리오를 반복 검증해 이를 해결했다. 로봇이 현실에서 실패를 겪기 전에 디지털 공간에서 실패 가능성을 먼저 제거한 셈이다.
이처럼 현실의 물리 조건과 제약을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겨 반복 검증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로봇과 자동화 설비, 자율 시스템 등 AI가 실제 공간에서 작동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현실 투입 이전에 안정성과 결과를 검증하는 것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피지컬 AI는 ‘신뢰성’이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영역으로 꼽힌다. 물리적 결과가 즉각 비용과 사고로 이어지는 구조여서다. 언어·이미지 중심의 생성형 AI와 달리 오류 허용 범위가 극히 좁다는 설명이다. 산업 설비나 로봇이 한 번 잘못 작동하면 인명 안전 문제는 물론 생산 중단과 품질 사고로 직결된다. 미국 정보기술산업위원회(ITIC)에 따르면 대형 데이터센터나 자동화 설비에서 시스템 장애가 발생할 경우 시간당 손실액이 최대 5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패를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 제거’ 방식으로 다루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실제 설비나 로봇을 움직이며 문제를 찾아내는 대신 물리 법칙과 공정 조건이 반영된 가상 공간에서 수천·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먼저 수행해 위험 요인을 걸러내는 구조다.
변화는 로봇과 제조업에서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로봇 기업들은 관절 하중과 마찰, 충돌 시나리오를 디지털 트윈 환경에서 먼저 검증한 뒤 장비를 제작·투입한다. 제조 현장에서는 설계(CAD)와 시뮬레이션(CAE)을 넘어 생산·운영 데이터까지 연동해 공정 전체를 가상 공간에 구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설계 변경 비용이 큰 조선·항공·반도체 산업에서 이러한 방식이 먼저 확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료와 에너지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의료기기 기업들은 사용자 생체 반응을 가상 환경에서 재현해 맞춤형 제품 설계에 활용하고, 에너지 기업들은 발전 설비와 전력망을 디지털 트윈으로 운영하며 고장과 사고를 예측한다. 실제 환경에서 실험이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을 가상 공간에서 먼저 검증하는 구조다.
이 여파로 시장도 빠르게 커지는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닷유에스에 따르면 전 세계 AI 기반 디지털 트윈 시장 규모는 2024년 37억달러(약 5조3650억)에서 2034년 약 813억달러(약 117조8850억)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휴스턴=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