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석유국가가 아니라 전기국가(electrostate)가 될 것이다.”
202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이 예언은 5년 만에 현실이 됐다. 지난해 중국은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서며 세계 최초의 ‘전기국가’로 올라섰다.
전략은 치밀했다. 중국은 세계 10위권에 근접한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도 산유국이 아닌 산전국(産電國)의 길을 택했다. 단순히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를 넘어, 전기화 기술을 만들고 수출하는 나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한 것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이를 두고 중국을 ‘생산형 전기국가(producer electrostate)’라고 규정했다.석유 없어도 된다…‘산전국(産電國)’된 중국산업혁명 이후 세계 경제를 움직여온 기술 패권은 늘 파도처럼 이동해왔다. 글로벌 싱크탱크 로키마운틴연구소(RMI)는 “증기기관과 전기, 석유, 정보기술을 거쳐 이제 여섯 번째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기화·에너지 효율·재생에너지를 축으로 한 ‘제6의 기술혁명’이다.
여섯 번째 물결을 가장 먼저 포착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에너지 소비 구조를 전기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하는 동시에, 태양광·배터리·전기차를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키워왔다. 이른바 ‘신(新) 3대 수출품(New Three)’이다. 2024년 중국 청정기술 산업의 경제 규모는 13.6조 위안(약 2800조원)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어섰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전기차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하는 등 청정기술의 GDP 기여도는 계속 커지고 있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은 이미 중국이 장악했다. 시장조사기관 PV인포링크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태양광 모듈 수출량은 235.93GW로 압도적 1위다. 브라질(22.5GW), 파키스탄(16.91GW), 인도(16.73GW), 사우디아라비아(16.55GW) 등 신흥국이 주요 수입국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방글라데시·파키스탄처럼 제조 기반이 약한 국가들을 ‘소비형 전기국가’로 분류했다. 제조는 중국에 맡기고 값싼 청정기술을 활용해 전기화와 탄소감축을 빠르게 달성하는 전략이다.
문제는 제조 경쟁력을 가진 국가가 소비형 전기국가에 머무를 경우다. 탄소배출은 줄어도 산업 주도권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이승재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은 “전력반도체, 배터리, 전력망 소프트웨어, 탠덤 셀 등과 같은 핵심 청정기술의 성능은 높이고 비용은 낮추는 혁신을 통해 우리 산업의 차세대 먹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생산형 전기국가'로 도약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포기하면 드론도 없다”...‘기술 블록’ 전략 중국 전환의 본질은 태양광 셀이나 배터리를 단순히 많이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이니셔티브를 통해 청정기술을 정보통신(ICT), 반도체, 자동화 설비, 정밀제조 등 핵심 산업 기술과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퍼즐판(기술 블록)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응축된 기술력은 군사용 드론, 산업용 로봇 등 첨단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쉽게 말해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는 군사용 드론에 쓸 자국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알리안츠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은 현재 태양광·풍력·배터리 제조 능력의 약 60%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시장 점유율의 문제가 아니다”며 “전력전자, 전기 모터, 자동화 시스템 등 인접 첨단 제조 분야로 기술이 흘러 들어가는 ‘기술 전이(Spillover)’의 핵심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청정기술 생산 역량이 고효율 모터 설계나 정밀 제어 기기 같은 기계·전기 공학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에너지·환경정책연구센터(CEEPR) 역시 중국의 청정에너지 기술 선점을 단순히 환경 정책의 성공으로 치부하지 않고, 국가 전체의 첨단 기술 경쟁력과 제조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거대 전략의 결과물로 봤다. 중국은 최근 몇년 새 태양광, 배터리 등의 수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거둬들이고 있다.
이미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생산형 전기국가 전략의 마지막 퍼즐로 수소산업을 지목하고 있다. 하지원 한국수소연합 국제협력실장은 “수소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잉여 전력을 대규모로 저장하는 에너지 매개체인 동시에, 열원이나 원료가 필요해 직접적인 전기화가 불가능한 중화학 공업 등의 영역을 탈탄소화함으로써 전기국가로의 전환을 최종적으로 완결하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