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시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장기 침체에 머물던 신약 개발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시화하고 있어서다. 투자업계는 이 시기가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작된 구조적 전환기인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주요 지표들은 제약·바이오 업계가 단순히 일시적인 사이클을 타는 것이 아니라,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새로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파이프라인의 양적 팽창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제약 산업 분석기관 사이트라인의 지난해 제약 연구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제약 산업이 보유한 개발 물질은 2만3875개로 역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런 흐름은 세계 최대 위탁연구개발생산 기업인 우시앱텍의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이 기업은 작년 한 해에만 6000개 이상의 신규 분자를 파이프라인에 추가했다. 특히 전임상과 임상 1상 단계의 약물 개수가 급증했다. 산업의 기초 체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세 가지 핵심 동력이 맞물린 결과다. 먼저 제약사들이 인공지능(AI)을 실질적으로 내재화했다. AI는 후보물질 발굴 시간을 크게 줄여 연구개발(R&D)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금리인하로 코로나19 팬데믹과 고금리 기조에 자금줄이 막혔던 유망 프로젝트들이 대거 재개되는 이연 수요 해소 효과가 더해졌다.
여기에다 주요 약물들 특허 만료라는 가장 강력한 중기적 동력도 작용했다. 키트루다, 옵디보, 세마글루타이드 등 5대 ‘블록버스터’ 약물의 합산 매출은 약 110조원에 달한다. 약물 단 5개가 세계 제약 시장 전체 매출의 약 5%를 차지한다. 머크 매출의 절반에 달하는 키트루다, BMS 매출의 22%를 담당하는 옵디보는 2028년 미국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성장을 견인한 세마글루타이드 역시 지역별로 특허 만료가 임박했다. 거대한 매출 공백을 메워야 하는 빅파마들은 생존을 위해 차세대 플랫폼에 투자하고 있다.
각종 기술도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과거엔 이론적 단계에 그쳤던 리보핵산(RNA) 편집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이제 실전 단계에 진입했다. 코로나19 백신으로 검증된 mRNA 플랫폼과 이중항체,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개발 속도가 빨라질수록 병목 구간도 선명해진다. 어떤 약이든 인간의 몸에 실험해 오랜 기간 추적 관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더 빠르게 만들 순 없어서다. 여기에다 정밀 의료의 발달로 특정 유전적 특성을 가진 환자군을 모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규제 기관의 엄격한 안전성 검증 기간도 여전히 장벽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큐비아나 타이거메드 등 임상 중계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환자를 모집해주고, 규제 대응의 표준을 제시하며 신약 개발 허브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이제 관건은 누가 더 정교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규제의 벽을 넘고 복잡해진 임상 환경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이제 운에 기대는 발견의 시대를 지나, 데이터와 효율이 승부를 가르는 진정한 과학과 경영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