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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Fed(미국 중앙은행)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Fed 이사가 지명되면서 크게 흔들렸던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습니다. Fed의 양적 완화(QE)를 비판해온 워시의 이력은 시장이 익숙했던 ‘쉬운 돈(easy money)’의 종말을 떠올리게 했고, 그 결과 주식·채권·금·비트코인이 동반 급락하는 ‘긴축 발작’이 나타났었지요. 이런 암울한 시장 분위기는 2일(현지시간) 미국 증시 개장 전까지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패닉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2일 미국 증시에서 S&P 500 지수는 0.5% 반등하며 사상 최고치에 다시 근접했고, 소형주 러셀 2000 지수도 1% 가까이 상승 마감했습니다. 1980년 이후 가장 큰 폭 하락했던 금과 은은 물론, 구리·백금·팔라듐 등 각종 금속 원자재도 반등하고 있습니다.
단편적으로는 워시가 시장이 걱정한 것만큼 강경한 매파가 아니라는 분석들이 쏟아지면서 공포를 잠재워준 덕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껏 주식과 귀금속·원자재 강세장을 이끌어온 핵심 변수가 바뀌지 않았다는 판단이 빠르게 확산했기 때문입니다.
골드만삭스의 트레이드 부문 총괄 마크 윌슨은 최근 급락의 본질을 Fed 정책을 비롯한 거시 환경의 변화가 아닌 주식과 금·은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쏠렸던 데 따른 '기술적 조정'으로 정의합니다. 견조한 미국 경제 성장과 트럼프 정부의 경기 부양책, 흔들림 없는 인공지능(AI) 투자 열기와 실물 자산 비중 확대 흐름 등 최근 시장의 방향을 결정해온 핵심 변수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워시라는 인물 하나로 이 모든 큰 흐름이 바뀌진 않는다는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안슐 세갈 골드만삭스 채권·외환·원자재 부문 공동총괄은 "주식과 금·원자재에 계속 매수 포지션"이라고 강조합니다. 드러켄밀러 "워시는 무조건적 매파 아니다"시장이 워시 지명으로 인한 '긴축 공포'를 빠르게 털어낼 수 있었던 데엔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워시의 멘토인 스탠리 드러켄밀러 인터뷰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워시 지명 이후 파이낸셜타임스, 배런스 등과 인터뷰를 통해 "워시는 무조건적인 매파가 아니"라면서 '실용주의자'로서 그의 성향을 시장에 피력했습니다.
특히 드러켄밀러는 워시가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통화정책 접근법에 대해 “매우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면서 그는 경제가 성장한다고 반드시 인플레이션이 뒤따를 것이란 고정관념을 믿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린스펀은 미국의 경제 황금기이자 정보기술(IT) 버블이 붕괴하기 이전인 1990년대에 Fed 의장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한때 IT 기업들의 주가 급등에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엔 “Fed의 목표는 경제와 금융 환경을 개선해 구조적인 생산성 향상을 촉진할 기술적인 혁신과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라며 금리를 5년 가까이 올리지 않았습니다. 생산성 혁명 덕분에 '물가 안정 속 호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것을 Fed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린스펀식' 완화적 금리 정책은 베센트 재무장관과 해셋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NEC) 위원장을 비롯한 트럼프 경제팀이 요구해온 것이기도 합니다. "AI는 강력한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이라고 공개적으로 강조해온 워시 역시 이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요. 드러켄밀러는 청문회 전까지 공식 발언을 삼가야 할 워시 대신 그의 생각을 시장에 다시 알린 셈입니다.
드러켄밀러는 또 "베센트와 워시는 반드시 함께 일할 것"이라면서 “재무장관과 Fed 의장 간의 공조는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공조 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장이 걱정했던 일방적인 양적 긴축(QT)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를 지운 것입니다. (드러켄밀러는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에서 일할 때 베센트에게 처음 일자리를 줬고, 베센트가 키스퀘어 캐피털을 설립할 때 자금을 지원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단기적 QT 전환 어렵다"...월가의 계산월가에서도 워시가 대차대조표 축소를 신속하게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내놓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워시가 의장에 취임하더라도 "QT 논의는 최소 2027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Fed가 지난해 말부터 단기채 매입의 형태로 '사실상' 양적 완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차대조표 정책을 급격하게 돌려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도이체뱅크 역시 "아무리 Fed 의장이어도 FOMC 동료 위원들을 설득하긴 쉽지 않다"면서 "단기간 내 통화정책이 눈에 띄게 변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실 Fed가 풀어주는 유동성 덕분에 자산 시장 부양, 준비금 이자 수익 등의 혜택을 받는 월가 은행들로선 지금의 '풍부한 유동성'이 줄어들길 원하지 않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미 Fed의 역할에 의존도가 높아진 국채 시장도 Fed가 몸집을 줄이기 시작하면 금리 변동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월가가 곱지 않은 눈으로 워시의 '작은 Fed'론을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정치적으로도 봐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긴축을 용인할 여지는 크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시 지명 하루 만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시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고소할 것"이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못해도 올해까지는 금리 정책도 대차대조표 정책도 완화적인 스탠스가 유지될 것이란 안도가 확산한 배경입니다. 주식, 금, 원자재 "종이보다 실물 자산"이런 판단 속에 '자산 강세장'에 대한 시장의 확신은 다시 굳어지고 있습니다. 세갈 골드만삭스 총괄은 AI 투자와 미국의 재산업화를 주식, 귀금속, 원자재 등 실물 자산 상승의 핵심 동력이라면서 올 한 해만 AI 관련 전 세계 설비투자(CAPEX) 규모가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는 "이 인프라 투자가 향후 5~10년 간 경제 성장의 엔진이 될 것"이라며 “Fed나 재정 정책은 이런 거대한 투자 파도에 비하면 작은 요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재정 팽창 정책과 완화적인 재정 정책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세갈은 이로 인해 생산성과 경제 명목 성장률이 놀라울 만큼 강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경기 과열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AI로 인한 노동시장 둔화와 K자형 양극화 경제 심화, AI와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디스인플레이션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린스펀식 사고처럼 '경기 과열 → 인플레이션 → 금리 인상'이 필연이 아닐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세갈은 동시에 금, 구리 같은 실물 귀금속과 원자재를 최우선 순위 자산으로 꼽습니다. 지정학적 분절 심화, 트럼프의 관세 정책, 완화적 정책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이 실물 자산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값은 최근의 급락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한 달간 10%, 지난 1년간 70% 올랐습니다. 세갈은 그럼에도 "투기적 광풍이 아닌 수십 년간 지속될 궤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원자재 시장은 유통 물량이 매우 적어 변동성이 커질 수 있지만, 달러에서 벗어나 금 비중을 늘리고 있는 중앙은행과 개인 투자자의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날 JP모건도 금의 올해 말 가격 전망치를 기존 5055달러에서 6300달러로, 2027년 말 전망치는 5400달러에서 6600달러로 상향했습니다. “종이 자산보다 실물 자산의 우위가 여전히 확고해 단기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상승 모멘텀은 온전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금과 달리 중앙은행이란 구조적 매수 주체가 없는 은에 대해선 의견이 더 갈립니다. JP모건은 "은이 금에 비해 더 깊은 폭의 가격 조정을 겪을 가능성이 우려된다"면서도 “평균적인 하방 지지선은 75~80달러로 이전보다 높아진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은 가격 전망치는 올해 말 85달러, 2027년 말 83달러로 제시했습니다. 해법은 금 + 주식 '바벨' 전략결론은 명확합니다. 세갈은 성장 자산인 주식과 화폐 가치 하락에 방어할 수 있는 자산인 금·구리 등 실물 원자재를 양대 축으로 가져가는 ‘바벨 전략’을 강조합니다. 지금이 AI로 인한 글로벌 재산업화와 신용 확장 사이클의 초기 단계라고 믿는다면 AI 기업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입니다. 동시에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훼손에 대비할 수 있는 실물 자산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세갈을 비롯한 채권 큰손들은 채권에 대해선 만기를 짧게 가져가는 '듀레이션 축소' 전략을 강조합니다. 채권을 보유하고 싶다면 인플레이션이 재발해 Fed가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리스크 시나리오에 대비해 최소한의 방어막으로 금리 변화에 덜 민감한 단기채를 편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변동성은 저가 매수의 기회"...주도 섹터는 주식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요? 월가에선 올해로 강세장 4년차를 맞이하는 미국 증시가 높아진 변동성에 시달릴 것이란 경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밸류에이션, 인플레이션 위험, 고용 둔화와 양극화, 정책 리스크, 중간선거 등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스캇 럽너 시타델증권 주식 및 파생상품 전략 책임자 역시 2월 조정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연초 자금 투입 효과가 약해지는 2월은 약세장이 펼쳐지는 패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2월 변동성은 저가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정책 모멘텀과 안정적인 기업 실적, 순환매에 따른 시장 폭 개선, '확신의 매수'로 시장의 수급을 주도하고 있는 개인투자자 덕분에 올해도 강세장이 지속될 것이란 기본 전망에 따른 것입니다.
변동성이 커지는 장세에선 승자가 될 수 있는 섹터와 기업을 선별하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지금처럼 AI 혁명과 지정학 질서 재편, 정책적 모멘텀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기엔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 테마·섹터가 핵심이 되겠지요.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AI 데이터센터·서버, 전력망, 우주·위성 같은 AI 하드웨어 및 인프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국방·안보와 희토류, 우라늄·원자력 등 정책 모멘텀의 수혜가 예상되는 테마 △금속, 구리, 채굴주 등 실물 원자재는 작년에 이어 올 초에도 상대적 수익률이 높았습니다. AI·전력·방위 테마와 연결되면서 '실물'이 있고, 정책·지정학적 촉매가 명확하게 있는 테마들입니다.
에너지와 주택 건설, 중산층 위주 소비재 섹터는 지난해 부진에서 올 초 회복세로 돌아섰습니다. 완화적 정책과 명목 경제 성장의 수혜가 기대되는 테마입니다. 반면 양자 테마, AI 주도주, 작년까지 강세장을 주도해온 매그니피선트 7 대형주는 올해 들어선 차익실현의 타깃이 되고 있고, 'AI에 잡아 먹힌다'는 내러티브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고밸류 소프트웨어나 저성장·저품질·레버리지 민감 종목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구조적 약세 구간에 있습니다.
결국 Fed 수장 교체라는 변수에도 '종이 화폐보다 실물 자산'을 선호하는 시장의 큰 그림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쉬운 돈'에 대한 환상은 일부 걷혔을지 몰라도 실물 원자재와 성장 주식을 함께 쥐는 전략은 여전히 월가의 정답지에 가장 가까워 보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