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서 나가라" 절대권력 셰프 한마디에 해고…큰코 다친다 [사장님 고충백서]

입력 2026-02-07 07:00
수정 2026-02-07 10:13

헤드 셰프가 주방 직원에게 "조용히 나가라" "그렇게 일할 거면 집에 가라"고 한 것은 '부당해고'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식당 운영업체 측은 부당해고를 하소연하는 후배 셰프에게 "셰프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며 셰프 세계의 분문율을 받아들이라고 했지만, 법원은 노동법 적용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집에 가" 절대권력 셰프 한마디에 실직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최근 광주의 한 건물에서 4곳의 식당을 운영하는 B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양식 셰프인 A씨는 지인이었던 광주의 한 양식당 '헤드셰프'의 제안을 받고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가 2023년 5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A씨가 내부에서 위생이나 동료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으면서, 4개월 뒤인 2023년 9월 헤드 셰프로부터 "이렇게 근무할 거면 집에 가라"는 날 선 호통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주방을 떠났다.

며칠 뒤 A씨가 식당 운영사인 B사의 임원과 면담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해당 임원은 "헤드 셰프가 하라니까 할 수밖에 없는 거지. 셰프들 세계가 그런 거라며" "내가 그 이상의 관여를 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며 헤드 셰프의 인사 결정을 사실상 승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같은 날 헤드 셰프는 A씨에게 "조용히 나가길 형으로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한 번 더 이상한 소리 나한테 들리면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 청구한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헤드셰프와의 오랜 친분으로 광주까지 내려와 근무했던 A씨는 "서운한 거 좀 풀었으면 한다"며 낮은 자세로 답변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중노위가 A씨의 손을 들어주자 B사가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한 것.

○법원 "해고 서면 통지 안하면 부당해고"...전문가들 "식당도 직장"재판에서 B사는 "A는 나가라는 발언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사직한 것"이라고 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시적인 사직 의사가 전혀 없었고, A씨가 다른 직장을 구하는 등 신변 정리를 한 정황도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되레 임원들의 방관하는 듯한 발언을 근거로 "헤드셰프의 (떠나라는) 결정은 B사의 위임·승인을 받아 이뤄진 것이므로 '해고'로 평가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를 바탕으로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위반한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해고 방식의 기본적인 절차를 못 지켰다는 의미다.

회사 측은 해당 식당의 상시 근로자가 5인이 안 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라 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같은 건물에 위치한 4개의 식당을 하나의 사업장으로 봐야 한다"고 일축했다. A사가 같은 건물에서 운영하는 실당 전체 직원을 합산하면 11명이 넘으므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라는 의미다. 모든 식당의 사업자등록증상 법인명이 '주식회사 B'로 기재돼 있고 동일한 상가건물의 같은 층에 있는 점, B사가 전체 사업장 운영 권한을 갖고 노무·회계를 통합 관리한 점을 들었다.

이번 판결은 요식업계의 폐쇄적인 주방 문화에 경종을 울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리 직군의 경우 좁은 주방에서 기름과 칼 등 위험한 물건을 다루고 도제식·군대식 교육이 이뤄지는 특성 탓에 직급과 숙련도를 이유로 한 인격적 모욕이나 일방적 인사 처분이 관행으로 용인되는 경향이 있었다. 영세 업체가 많아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인 것도 근로기준법 사각지대가 된 이유다. 드라마나 해외 예능 등에서 비치는 셰프들의 모습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 것도 크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 사이에서 “(취업했을 당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았다”는 증언이 잇따른 것도 열악한 요식업의 현실을 반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철현 법무법인 대환 변호사는 “요식업계는 도제식 교육과 셰프 중심의 문화 탓에 노동법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쉬운 업종”이라며 “주방도 예외 없는 직장인만큼, 드라마나 해외 유명 예능에 나오는 셰프처럼 반복적으로 고성을 지르거나 교육을 이유로 최저임금 등 법정 보수를 주지 않았다가는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거나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입건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