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원치 않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우수한 유전자를 기증해 줄 남자를 찾아 나서는, 이른바 ‘정자 기증 프로젝트’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매기스 플랜>(2015)의 주인공 매기(그레타 거윅)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뉴요커들의 솔직하고 쿨한 삶의 방식을 조명한다. 특히 매기는 전 연인이었던 토니와 그의 아내 펠리시아 부부와 격의 없이 지내는데, 그녀가 토니에게 정자 기증 계획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보여준다. 매기가 낙점한 정자 기증 후보는 친구 가이(트래비스 핌멜)이다. 매력적인 외모에 수학을 전공해 명석한 두뇌가 엿보이며, 현재는 홀푸드마켓에 납품하는 피클 사업까지 하는 육각형의 남자다. 가이 역시 제안에 흔쾌히 응하면서 매기의 계획은 순항하는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매기는 우연히 어떤 한 남자와 마주친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얇은 금테 안경을 쓴 존(에단 호크)이다.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그는 오랜 시간 구상해온 장편 소설을 틈틈이 집필 중이다. 존은 이미 가정이 있는 몸이었기에, 두 사람은 이성적인 긴장감 보다는 소설과 인생을 화두 삼아 담백하게 가까워진다. 유난히 춥던 어느 겨울 오후, 이들은 공원에서 다시 만난다. 하필이면 두 사람은 얼어 죽어도 코트를 포기 못하는 골수 뉴요커였다. 결국 매서운 추위를 견디지 못한 매기는 근처 자신의 집에서 이야기를 마저 나누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즉석에서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면 대체로 마실 것을 권한다. 낮에는 커피 또는 차, 밤에는 술 한 잔까지. 매기는 존에게 따뜻한 차와 와인 그리고 (조금 이르다는 말을 덧붙이며) 위스키를 권한다. 존은 망설임없이 대답한다.
“핫 위스키로 하죠. 꿀이랑 레몬 있어요?”
마침 매기의 집에는 레몬 반 개와 꿀이 있었다. 추운 겨울의 오후, 두 사람은 책과 액자로 둘러싸인 아늑한 소파에 앉아 핫 위스키를 마시며 몸을 데운다. 매기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마치 딱 알맞은 온도의 욕조에 몸을 담근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추운 날의 핫 위스키는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단숨에 녹여버리는 치트키와 같은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핫 위스키(Hot Whiskey)는 단어 그대로 단순히 ‘뜨거운 위스키’였을까? 사실 이는 역사가 아주 오래된 칵테일의 이름이다. 핫 위스키는 오래 전부터 인류가 만들어서 즐겼던 술이다. 전 세계에서 맥주를 가장 먼저 마신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기원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 만드는 방법이 같아도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를 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핫 토디(Hot Toddy)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핫 토디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핫 위스키라고 부르는 나라는 대표적으로 아일랜드가 있다.
그렇다면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왜 ‘핫 토디’가 아닌, ‘핫 위스키’라는 표현이 등장했을까? 답은 감독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레베카 밀러는 아카데미에서 세 차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국적을 가진 남편과 함께 아일랜드의 위클로(Wicklow)에서 거주해온 그녀에게, 추운 날 몸을 데워주는 이 술은 핫 토디보다는 핫 위스키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을 것이다.
핫 위스키를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먼저 열을 견딜 수 있는 잔에 위스키를 따르고, 레몬과 꿀을 넣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 섞으면 된다. 위스키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오리지널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제임슨, 부쉬밀, 레드 브레스트, 맥코넬스 등의 아이리쉬 위스키가 좋겠다.
책바에서는 손님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달콤한 풍미가 매력적인 버번 위스키를 주로 사용한다. 이제 테이스팅해볼 차례다. 잔을 가까이 가져가면, 가장 먼저 뜨거운 김을 타고 위스키의 오크 향과 레몬의 시트러스한 향이 섞인 향을 맡을 수 있다. 한 모금 머금으면 꿀의 달콤함이 혀를 감싸다가, 곧이어 위스키의 묵직한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 속까지 따뜻한 열기를 더할 것이다.
핫 위스키의 탄생 배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오늘날 하이볼이 유행하듯, 그 시절에도 위스키를 낮은 도수로 부드럽게 즐기고 싶은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춥고 습한 아일랜드 날씨 속에서 뜨거운 물과 레몬, 꿀을 더해 마시는 방식은 자연스러운 풍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위스키를 약용으로도 사용했기에, 비타민 C가 풍부한 레몬과 에너지를 주는 당분이 결합된 핫 위스키는 훌륭한 감기약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편, 핫 토디는 핫 위스키에 비해 역사적 사료가 많으며 그만큼 유래도 다양하다. 가장 유력한 설은 인도와의 접점이다.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토디(Toddy)는 힌디어로 나무 수액을 뜻하는 타리(Tari)에서 유래했다. 1600년 대 당시 영국 동인도 회사에서는 열대 야자수 수액을 발효시켜서 마셨다고 한다. 이 명칭이 스코틀랜드의 따뜻한 위스키 음용 문화와 더해져 현재의 핫 토디가 되었다는 설이다.
세계적인 주류 매거진 펀치 드링크(Punchdrink)에서는 토디라는 이름의 레시피가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를 1750년의 <보스턴 위클리 포스트 보이(Boston Weekly Post Boy)>로 소개했다. 이는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의 한 스코틀랜드의 의사가 토디를 ‘건강을 위한 최고의 음료’라고 단언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핫 토디는 전 인류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겨울 칵테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영화 속 매기와 존은 핫 위스키를 마시며 타인에게 쉽게 꺼내기 힘든 속마음을 나눈다. 따뜻한 차나 커피였다면 나오지 않았을, 오직 알코올의 온기만이 끌어낼 수 있는 솔직함이었다. 추운 겨울날,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할 계획이 있다면 핫 위스키를 대접해 보는 건 어떨까? 찬장 속에 잠자고 있는 위스키와 유통기한 걱정 없는 꿀, 그리고 싱싱한 레몬만 있다면 준비는 충분하다.핫 위스키 레시피재료
45ml of Whiskey
5ml or 1 Slice of Lemon
15ml of Honey syrup
150ml of Boiling water
Optional : Ginger Juice 5ml, 1 Cinnamon stick
만드는 법
내열 가능한 잔을 뜨거운 물로 데워놓는다.
뜨거운 물을 비우고, 위스키와 레몬 그리고 꿀을 넣는다. (진저 원액과 시나몬 스틱이 있다면 추가해도 좋다)
뜨거운 물을 다시 채우고 잘 섞어준다.
정인성 책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