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무자를 대신해 갚은 서민 정책금융상품 햇살론 규모가 3년 연속 1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침체 여파로 빚을 갚지 못하는 서민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최근 거듭된 대출 금리 상승으로 연체 위험이 더욱 커지면서 정부의 포용금융 확대 정책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내수 침체에 빚 못 갚는 서민3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햇살론 대위변제액 규모는 1조1108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1조5198억원), 2024년(1조4675억원)에 이어 또 1조원을 넘어섰다.
대표상품인 햇살론15의 대위변제액(4440억원)이 가장 많았다. 직장인 전용 상품인 근로자햇살론(3038억원)과 성실상환자용 상품인 햇살론뱅크(2079억원), 신용점수 하위 10%(연소득 4500만원 이하)를 대상으로 한 최저신용자 특례보증(972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정부의 햇살론 개편으로 근로자햇살론과 햇살론뱅크는 햇살론 일반보증, 햇살론15와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햇살론 특례보증으로 통합됐다.
햇살론은 연소득 3500만원 이하 또는 연소득 4500만원 이하면서 신용점수 하위 20%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민금융상품이다. 일반보증은 최대 1500만원, 특례보증은 최대 1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오랜 내수 부진의 충격이 서민의 대출 상환 여력을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3%를 기록하며 세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내수의 성장기여도가 -0.1%포인트, 민간 소비 증가율은 0.3%에 그쳤다. 실물경제가 위축된 가운데 국내 은행의 지난해 11월 말 가계대출 연체율은 0.44%까지 올랐다. 2021년 말(0.16%) 이후 4년간 상승세다.
금융권에선 특히 정부의 대위변제율이 올라가는 데 주목하고 있다. 햇살론15의 지난해 대위변제율은 26.8%로 2019년 9월 출시 이후 가장 높았다. 1000만원을 빌려줬다면 268만원은 돌려받지 못하고 정부가 대신 갚아줬다는 얘기다. 정부가 3~4년 전 내놓은 최저신용자 특례보증(28.8%), 햇살론카드(22.2%), 햇살론뱅크(17.1%)도 차주의 연체가 본격화하면서 대위변제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연체 부담, 포용금융 변수로올해도 서민을 둘러싼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음을 고려하면 정부가 한동안 대규모 빚을 대신 갚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가 가라앉은 가운데 지난해 9월부터 대출 금리가 연이어 오르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내 은행의 일반 신용대출(신규 취급 기준) 금리는 평균 연 5.87%로 10월(연 5.19%) 이후 두 달간 0.68%포인트 뛰었다. 신용점수 700점 이하 저신용자의 경우 연 6.53~17.28%의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올 들어서도 시장금리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이자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용금융을 적극 확대하고 있는 정부로선 향후 대출의 연체 관리가 만만치 않은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올해부터 햇살론 특례보증의 금리 상한선을 기존 연 15.9%에서 연 12.5%로 인하해 대출 문턱을 낮췄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겐 연 9.9%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기조에 발맞춰 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금융그룹도 5년간 포용금융에 7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민을 상대로 한 대출 공급 자체가 늘면서 연체 규모도 함께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은행뿐 아니라 정부도 대출 자산의 건전성 관리를 두고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