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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유동성 공급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머니 게임'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 80년간 세계 경제의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온 국제통화기금(IMF)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다. 한국 등 소규모 개방 경제국들은 '돈을 빌릴 곳'을 찾기 위해 고도의 외교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위안화 공급 강화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지난달 26일 위안화 유동성 자금 확대 조치 지난 2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HKMA는 기존 1000억 위안이었던 자금 한도를 2000억 위안으로 두 배 늘렸다.
에디 위에 HKMA 총재는 "이번 조치는 시장의 발전 수요를 충족시키고 시의적절한 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 인민은행(PBOC)의 강력한 지원 아래 홍콩의 글로벌 역외 위안화 허브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한도 증액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인민은행이 홍콩을 '저수지'로 삼아 달러가 부족한 역외 시장에 위안화를 공급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금융 배관'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달러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미 중앙은행(Fed)에 의지했던 아시아 국가에 "이제 위안화를 쓰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의견이다.
반면 서방 주도의 전통적 금융 안전망인 IMF의 역할은 축소됐다。 IMF가 2020년 도입한 '단기유동성 지원(SLL)' 제도는 오는 2027년 4월 완전히 폐지하기로 확정됐다. 펀더멘털이 튼튼한 국가에 조건 없이 단기 자금을 빌려주겠다던 이 제도는 지난 5년간 칠레 1개국만 이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미 Fed가 전 세계에 달러를 뿌리며 '글로벌 소방수' 역할을 했다. 당시 Fed는 한국을 포함해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 등 4개국과 신규 스와프를 체결하며 위기를 진화했다. 경제적 효율성과 글로벌 금융 시스템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 조치였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시대에는 변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금융 안전망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니다. 동맹 여부와 전략적 가치에 따라 선별적으로 제공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Fed의 위기 대응 도구가 무기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적자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통화 스와프 라인을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며 "관세 합의가 안 되면 스와프를 끊겠다는 식의 압박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중국의 '부채 외교'라는 분석이다. 세계은행과 하버드대 연구진의 분석 등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약 17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22개국에 지원했다. 같은 기간 IMF가 지원한 금액의 약 20%에 육박한다. 중국은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국가들을 위안화 스와프 네트워크로 빨아들이고 있다.위안화 블록의 부상이런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다극화'는 실물 경제와 금융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HKMA의 RBF(위안화 비즈니스 설비)확대는 글로벌 은행에 위안화 비즈니스의 '안전판'을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홍콩 내 참여 은행들은 인민은행이라는 거대한 최종 대부자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위기 시에도 익일물(T+1) 또는 당일물(T+0)로 위안화를 조달할 수 있다.
이는 역외 위안화 채권(딤섬본드) 발행과 위안화 무역금융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스탠다드차타드 등 홍콩 주재 글로벌 IB들은 위안화 기반의 파생상품 라인업을 확충하고 있다. 중국과 교역 비중이 높은 동남아시아 기업은 달러 결제 비중을 줄이고 위안화 결제를 늘리는 이른바 '화폐 세탁'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제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은 2%를 돌파하며 6위 통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위안화 영향력 확대가 글로벌 금융 시장의 위험을 확대하고 지적도 있다. 중국의 통화 스와프는 신흥국들에 IMF를 대신하는 '그림자 구제금융'으로 작동하고 있다. 중국 스와프 라인은 IMF 자금의 대체재라기보다 IMF 프로그램 협상 중의 '브리지 론'이나 IMF 상환 자금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해석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2023년 IMF 대출 상환을 위해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 자금을 인출해 사용했다. 빚(달러)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위안화)을 내는 악순환인 셈이다. 해당 국가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카르멘 라인하트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구제 금융은 불투명하고 조정되지 않았으며 주로 중국에 빚을 많이 진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스와프는 표면적으로는 '내정 불간섭'을 내세운다. 하지만 실제 계약서에는 높은 금리, 비밀 유지 조항, 자원 담보 설정 같은 독소 조항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IMF는 지난해 9월 발간한 '중앙은행 외화유동성 라인 기록 가이드'에서 "양자 스와프가 사실상 선순위 채권처럼 취급돼 국가 부도 위기 시 다른 채권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Fed의 스와프라인도 한계는 있다. Fed의 스와프는 효과가 확실하지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국가는 극소수다. 브래드 세서 연구원은 "연준의 스와프라인은 좁은 역할을 수행하며, 글로벌 경제에는 스와프라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달러 자금 수요가 많다"고 지적했다. '선택받지 못한' 대다수 신흥국에게 Fed는 '그림의 떡'이다.
금융안전망의 파편화는 전 세계적인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은 위기 시 달러를 빌릴 수 있다는 확신이 줄어들면서 더 많은 외화보유액을 쌓아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생산적인 곳에 투자되어야 할 자본이 국고에 잠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샌드위치' 신세다. 한국의 외화보유액은 지난달 기준 4259억1000만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2008년과 2020년 위기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한미 통화스와프는 현재 종료된 상태다. 중국과는 56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기 시 달러 조달 창구로 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원화를 주고 위안화를 받아와도, 그 위안화를 다시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가치 폭락이나 제재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자금의 사용은 한미 관계에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정치적 지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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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