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1억4000만원대에 형성되던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 말께 1억20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복적인 통상 위협으로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이끈 기관의 자금 유입세가 순유출로 돌아선 결과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이사를 차기 Fed 의장 후보로 지명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한 점도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향후 미국 기준금리가 하락하는 속도도 투자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비트코인 가격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커지고 있다.◇비트코인, 9개월 만에 최저치 기록
3일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지난달 30일 오전 11시께 1억1910만원에 거래됐다. 비트코인 가격이 1억2000만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작년 4월 11일 이후 약 9개월 만에 처음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새해 들어 지난달 중순까지는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 1월 1일 1억2806만원에 거래를 시작해 1월 15일 오전 6시엔 1억4295만원으로 보름 동안 약 12%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15일 동안 16.7% 하락하면서 1억1000만원대까지 하락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의 하락을 이끈 가장 큰 요인으로는 세계 각국으로 확산하는 지정학적 불안이 꼽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관세 부과 위협으로 통상 분쟁 우려가 커질 때마다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린란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19일 오전 8시까지만 해도 국내 시장에서 비트코인은 1억4120만원에 거래됐다. 하지만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을 추진하는 미국에 반발해 유럽연합(EU)이 159조원 규모의 보복관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비트코인 가격은 약 2시간 만인 오전 10시 1억3700만원까지 떨어졌다. 통상 분쟁이 확산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22일 오전 2시엔 1억3000만원까지 가격이 밀렸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군사력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히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1억3300만원대로 올랐으나, 반등세가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오히려 26일엔 낙폭을 키워 비트코인 가격이 국내 시장에서 1억30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통상 갈등이 불거진 영향이 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모든 캐나다산 수입품에 대해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협정을 맺은 탓에 값싼 중국산 제품이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대거 유입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캐나다에 대한 미국의 관세 위협 소식이 전해지자 비트코인 가격은 국내에서 1억2000만원대로 주저앉았다.◇기관 자금도 순유출미국이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면서 암호화폐 시장에 유동성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진 점도 지난달 비트코인 가격에 하방 압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Fed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3.5~3.75%로 동결했다. 작년 9월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 때마다 기준금리를 낮춰온 Fed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작년 7월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 전 Fed 이사를 차기 Fed 의장 후보로 지명하면서, 향후 통화정책 기조가 완화보다는 긴축 쪽에 무게를 둘 수 있다는 해석도 시장에 확산됐다. 워시 전 이사는 인플레이션 관리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투자자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 퍼졌다.
통화정책이 암호화폐에 친화적이지 못한 가운데 그동안 ‘호재’로 여겨졌던 미국의 가상자산 입법 논의가 최근 답보 상태에 빠진 점도 비트코인 가격의 약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에서의 암호화폐 규율 체계를 정립한 ‘클래리티 법안’이 코인베이스 등 가상자산 사업자의 반대에 직면하면서 올 상반기 내 통과가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이끈 기관의 자금도 암호화폐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는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순유출됐다. 이 기간 빠져나간 금액은 약 48억달러다. 지난달 29일 하루 순유출액(8억1790만달러)은 작년 11월 20일 이후 3개월 만에 가장 컸던 것으로 집계됐다.
알렉스 쿠프치케비치 Fx프로 수석연구원은 “암호화폐는 더 이상 법정화폐의 대안 또는 주요국의 무책임한 재정정책의 헤지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오히려 일시적으로 금과 은의 포지션을 강화하는 자금조달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