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재가 키운 중국 반도체 괴물…中 팹리스 돈 쓸어담는다 [강경주의 테크X]

입력 2026-02-03 08:00
수정 2026-02-03 08:43

요즘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인공지능(AI) 반도체 회사는 캠브리콘이다. 이 회사의 이름은 5억4200만 년 전 고생대가 시작된 시기인 '캠브리아기'와 반도체의 주재료인 '실리콘'에서 따왔다. 캠브리아기는 지구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다양해진 '캠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난 시기다. AI산업에서 캠브리아기 같은 폭발적 발전을 이끌겠다는 중국 AI 굴기의 상징을 회사명에 담은 것이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캠브리콘이 중국 내 AI 칩 수요 확대에 힘입어 첫 연간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3일 캠브리콘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지난해 실적 전망을 발표하며 지난해 매출이 60억∼70억 위안(약 1조 2548억∼1조4627억원)으로 전년 대비 410.8%∼496.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매출 급증과 함께 실적도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캠브리콘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18억5000만∼21억5000만 위안(약 3868억∼4492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년 4억5000만 위안의 순손실에서 크게 개선된 수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25년은 캠브리콘 상장 이후 첫 연간 흑자를 달성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중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이 세운 첫 연간 흑자 기록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금융·경제 정보 매체인 신랑재경은 "(캠브리콘의 흑자 전환은)중국 반도체 기술의 시장성을 증명하고, 반격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이정표"라고 분석했다.

캠브리콘은 2016년 중국과학원(CAS) 출신 천톈스·천윈지 형제가 창업했다. 창업 초기에는 CAS의 지원을 받아 분사했고, 지금도 CAS가 15.7%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다. 첫 고객은 화웨이였다. 2018년 매출의 98%를 화웨이에 의존하며 스마트폰용 AI 라이선스를 공급했지만 화웨이가 독자 기술로 대체해 관계가 끊겼다. 2022년엔 미국 정부가 캠브리콘을 '거래제한 기업' 목록에 올리면서 제조 파트너이던 TSMC와의 협력이 중단됐다. 하지만 곧바로 중국 내 제조업체와 손잡으며 자국 칩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시장에서는 캠브리콘의 실적 개선 배경으로 AI 연산 수요 확대와 중국 당국의 반도체 자립 정책을 꼽는다. 특히 미중 갈등 속에서 엔비디아의 AI 칩 H20의 중국 판매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자 중국 당국이 자국 빅테크 기업들에 국산 AI 칩 사용 확대를 주문하면서 캠브리콘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첨단 AI 칩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서 엔비디아와 AMD 제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중국 빅테크들이 국산 칩을 대거 채택했고 이 과정에서 캠브리콘의 매출과 수익성이 동시에 개선됐다는 것이다.

실제 캠브리콘의 성장은 미국의 첨단 AI 칩 수출 통제 강화 속에 실적이 대폭 호전됐다. 2024년 4분기 처음 분기 흑자를 기록했고, 당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5% 급증했다. 캠브리콘은 "우수한 칩 설계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계속 확대했다"며 "AI 응용 시나리오의 현장 적용을 적극 추진한 결과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크게 늘었으며 회사 전반의 경영 실적도 개선됐다"고 밝혔다.

중국 반도체의 흑자 행진은 캠브리콘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무어스레드' 역시 주력 제품인 MTT S5000의 수요 급증으로 2025년 매출이 전년 대비 최대 247% 증가한 15억2000만위안, 순손실은 전년 대비 최대 41% 줄어든 10억위안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무어스레드는 지난해 12월 중국판 나스닥인 커촹반에 '중국산 GPU 1호 주식' 타이틀을 달고 상장한 중국 토종 팹리스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도 '슈퍼 사이클'의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스토리지 기업 '비윈 스토리지'는 순이익이 최대 520%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차이나 마이크로 세미컨덕터(CMS)'와 '기가디바이스'도 각각 108%, 46%의 이익 성장을 예고했다. 반도체 장비 및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의 국산화 성과도 두드러졌다. 미국의 수출 통제로 ASML의 장비 도입이 어려워지자 중국 내 대체 수요가 폭발했다. 중국 식각 장비 업체인 'AMEC'은 매출이 37% 증가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전자설계자동화(EDA) SW 기업 '프리마리우스'는 2022년 이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업계에선 반도체 슈퍼 사이클 외에 현지 팹리스들의 혹독한 '밤샘 연구개발(R&D)' 문화가 중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인은 게으르고 느리다'는 의미의 '만만디'를 캠브리콘이 바꿔놨다는 말까지 나온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치열하게 연구하는 캠브리콘 엔지니어를 일컬어 '아오예 궁청스'(밤샘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캠브리콘은 철저하게 엔비디아의 '하드 워크' 문화를 벤치마킹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