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갈라 한가운데 남은 침묵, 베자르의 ‘의자’

입력 2026-02-03 09:47
수정 2026-02-03 10:54
화려한 발레 갈라는 대개 기억에 남기 쉬운 장면으로 끝난다. 이름값이 증명하는 기량, 정교한 테크닉, 박수의 타이밍까지 계산된 완벽한 마무리. 지난달 31일 도쿄 시부야 분카무라에서 열린 발레 갈라 ‘Zenith of Ballet’ 역시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는 무대였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마리아넬라 누네즈와 아카네 타카다, 마린스키발레단의 디아나 비슈뇨바, 메이 나가히사와 전민철,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위고 마르샹까지. 세계 정상급 무용수들이 차례로 무대를 채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공연이 끝난 뒤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2부에 등장한 ‘의자’(모리스 베자르 안무)였다. 화려한 갈라의 흐름과는 다른 차원을 가진 작품이었다.



무대를 채운 것은 무용수들의 몸이 아니라 수많은 의자들이었다. 그 사이를 오가는 존재는 노인과 노파 역의 질 로만과 디아나 비슈뇨바 단 두 명. 노인 역의 질 로만이 프랑스어로 거칠게 내뱉는 대사는 이 작품이 처음부터 ‘발레는 말이 없는 춤’이라는 통념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음을 알렸다. 향연을 기대하던 관객 앞에 베자르는 텅빈 의자들을 내세웠다.

전설적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1927~2007)에게 발레는 보여지는 기술이 아닌 사유의 도구였다. 1981년 초연된 ‘의자’는 그의 중·후기 창작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미 세계적 명성을 확보한 이후의 베자르는 더 이상 외형적 화려함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존재와 시간, 기억과 부재 같은 질문을 무대 위로 불러올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무대 위에 놓인 의자들은 앉을 사람을 기다리고, 이미 떠난 이를 위해 남겨진다. 하나둘 늘어나는 의자들은 결국 무대를 잠식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무게를 가시화한다. 노인과 노파가 그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동선은 삶의 회귀처럼 느껴진다. 말과 침묵이 교차할 때마다 무대는 춤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생각을 머무르게 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 빈 의자들은 열정적인 무용수들에게 보내는 베자르의 은밀한 경고처럼 읽힌다. 아무리 빛나는 춤을 췄더라도 시간이 흐른 무대 위에는 부재만이 남는다는 사실. 나아가 "그 누가 아무리 찬란한 삶을 살았을 지라도 언젠간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사라지고 만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말하고 있었다.



질 로만과 디아나 비슈뇨바는 이러한 베자르의 미학을 과시 없이 구현했다. 비슈뇨바는 전통적인 발레리나의 기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말의 리듬, 시선의 흐름, 의자에 몸을 기대는 무게로 존재의 감각을 전달한다. 젊은 날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인이 노파를 향해 헛된 말을 쏟아낼 때, 느리고 길어진 움직임은 신체보다 시간의 고통을 먼저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베자르의 초기 대표작 ‘볼레로’를 떠올리게 된다. 1960~61년, 30대 초중반의 베자르가 만든 ‘볼레로’는 하나의 몸에서 시작해 집단으로 확장되는 군무를 통해 리듬과 에너지의 극대화를 실험한 작품이다. 모리스 라벨의 반복적인 음악 위에서 신체의 집단적 흥분을 밀어붙였고, 이는 베자르를 국제적 안무가로 부상시켰다.

‘볼레로’가 젊은 베자르의 확신과 야망, 리듬에 대한 집착을 보여줬다면 ‘의자’는 그 이후 도달한 사유적 발레의 또 다른 종착지다. 수많은 무용수가 무대를 채우는 대신, ‘의자’는 정적의 밀도와 파편화된 움직임으로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많은 몸이 리듬을 공유할 수 있는가를 묻던 안무가는, 이제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을 때도 춤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발레가 반드시 젊고 탄력적인 신체를 전시하는 장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그는 끝까지 밀어붙인다.




도쿄 분카무라에서 ‘의자’를 마주한 경험은 오는 4월 서울에서 열릴 베자르 발레단의 내한 공연 ‘볼레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25년 만에 서울을 찾는 이 작품은 여전히 강렬한 리듬과 집단적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이제 단순한 열광이 아니라, 침묵과 부재를 통과한 이후의 리듬으로 읽힌다.

베자르의 서로 다른 두 작품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하나다. 발레는 결국, 몸과 시간, 존재를 통해 세계와 대화하는 방식이라는 것. 화려한 갈라의 한가운데서 ‘의자’가 가장 오래 남았던 이유도, 어쩌면 그 대화가 가장 조용하면서도 집요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도쿄=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