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하루 새 5% 가까이 급락하며 한때 7만5000달러가 붕괴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이틀 새 2500억달러(약 360조원)가 증발했다. 표면적으로는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분류되는 케빈 워시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이사가 차기 Fed 의장에 지명된 이른바 ‘워시 쇼크’가 작용했다. 하지만 안전자산인 금뿐 아니라 위험자산인 주식과도 탈동조화(디커플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비트코인의 자산적 가치에 의문이 커졌다는 해석도 나온다.◇부진 두드러지는 비트코인2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날 낮 12시30분께 24시간 전 대비 4.67% 하락하며 7만4998달러에 거래됐다. 비트코인이 7만5000달러를 밑돈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9개월여 만이다. 국내에서는 1억1063만8000원을 기록하며 한때 1억1000만원 선이 위협받았다.
비트코인은 올해 들어 13.91% 하락했다. 금값(선물 기준)이 트로이온스당 5600달러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때도 약세를 보였다. 그렇다고 위험자산인 주식과 비슷한 흐름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올해 들어 나스닥(0.97%), S&P500(1.17%) 등 미국 주식은 약보합세였기 때문이다. 코스피(15%)와 비교하면 비트코인의 부진은 더 두드러진다. 워시 쇼크가 촉발됐을 때도 은을 제외하고는 비트코인의 하락률이 가장 높았다.◇파생상품 거래 비중 높아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금리 환경뿐 아니라 위기 국면에서만 부각되는 자산적 한계, 파생시장 중심의 수급 구조라는 세 가지 덫에 동시에 걸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들고 있어도 이자가 붙지 않는 자산이다. 금리 인하가 늦어질수록 투자자는 이자나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채권, 주식 등으로 이동한다. 이번 워시 쇼크 이후 시장이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을 선반영하면서 비트코인이 가장 먼저 매도 대상이 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산적 한계도 부각됐다는 평가다. 과거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와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번질 우려가 크던 당시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최근 경제 상황은 금융 위기라기보다 금리와 환율, 경기 흐름을 두고 시장이 방향을 가늠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비트코인이 안전자산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금은 중앙은행 매입과 실물 수요라는 상시적 수요 기반을 갖췄지만 비트코인은 위기 상황이 아니면 수요를 방어할 장치가 약하다”고 말했다.
수급 구조 역시 하락 폭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비트코인 시장은 현물 거래보다 선물 등 파생상품 거래 비중이 높다.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 거래도 많다. 이 때문에 가격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손실을 막기 위한 강제 매도가 한꺼번에 쏟아져 하락 폭이 더 커지는 구조다. 실제로 7만5000달러가 무너지자 단기 매물이 쏟아지며 낙폭이 빠르게 확대됐다.◇손실 구간 들어선 스트래티지향후 가격 흐름을 두고는 당분간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뚜렷한 상승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파생시장 중심의 거래 구조상 가격 반등이 나타나더라도 기술적 반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 기업으로 알려진 스트래티지는 최근 하락으로 보유 물량이 손실 구간에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래티지의 평균 매입 단가는 7만6037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비트코인 71만2647개를 보유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스트래티지의 평균 단가를 밑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