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완생'을 요구하는 정치의 책임

입력 2026-02-02 17:26
수정 2026-02-03 00:10
경력직 신입. 대한민국의 고용시장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표현이다. 고용하는 쪽은 고용되는 쪽을 가르칠 여유도, 실패를 감당할 여력도,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조직은 이미 완성된 사람만을 원한다. 드라마 미생 속 장면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 구조에서 예외일까. 오히려 정치는 처음부터 ‘완생’을 요구받는 영역에 가깝다. 정치인의 판단과 결정은 곧바로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정치에서 신입이라는 이유로 시행착오가 허용되기는 어렵다. 정치는 배우면서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준비되어 등장해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그 완성에 이르는 경로다. 정치 신인에게는 경력직과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만, 그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은 이미 완성된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요구받지만, 그 완성을 위한 체계적인 경험의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제되지만, 정작 준비할 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은 찾기 어렵다.

정치와 정당의 문화는 이 모순을 반복해 왔다. 선거철에 새로운 얼굴과 청년을 찾지만, 그 역할은 대개 상징에 그친다. 정당은 늘 인재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인재를 만들어내는 구조에는 인색하다. 그 결과 정치 신인의 평가 기준은 실력보다는 배경이 된다. 내가 지난 선거에서 경선을 오히려 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특혜조차 논란이 되는 구조 속에서, 출발선부터 의심받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정치에 도전하는 사람이 배경이 아니라 실력과 준비로 평가받는 게 당연한 문화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기업은 완성된 인재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 완성에 이르는 경로를 제도화해 왔다. 인턴과 수습, 직무 교육은 모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경험을 조직이 함께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반면 정치는 어떠했는가. 완생만을 요구하면서, 막상 준비된 인물이 등장해도 그의 실력보다 배경을 먼저 궁금해하며 평가절하해 왔다. 그리고 그 완성의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해 왔다. 정치가 학습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백번 옳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정당은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정치인을 키우는 데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정치는 개인의 용기와 헌신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완생을 요구하는 정치라면, 완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적인 구조 역시 필요하다. 특혜나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신뢰와 지속 가능성의 문제다. 완성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긴다면, 역설적으로 완성된 척하는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정치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준비된 사람만을 원한다면, 그 준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정치, 그중에서도 정당의 시스템이 답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