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고 했다. 찰나의 클릭으로 화려한 이미지가 휘발되는 ‘속도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사람은 억겁의 시간을 견뎌낸 것들에 매료된다. 쇼츠와 릴스에서 벗어나 굳이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씩 캔버스와 사투하며 작가가 쌓아 올린 붓질을 궤적을 감상하는 것은 시간의 가치를 마주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서울 서교동 갤러리유정에서 오는 4일부터 열리는 권두현 초대전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는 시간을 쌓는 미학을 보여주는 전시다.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미술 플랫폼 할레14(Halle14) 스튜디오 등에서 활동한 권두현은 반복과 축적이라는 회화적 태도를 견지한다. 즉각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그림이 아닌 오래 바라볼수록 감각이 넓어지는 회화를 보여주는 작업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는 시간이 그림에 스며드는 과정에 주목한 ‘너비, 길이, 높이, 길이’라는 개념 축으로 구성된 장기 연작의 첫 번째 장(章)인 너비를 조명했다. 노란색을 중심으로 한 봄의 에너지를 전면에 펼쳐 화면의 개방성을 표현했다. 반복돼 칠해진 색채로 축적된 시간이 관람의 감각을 확장한다는 뜻이 담겼다.
시간을 쌓는 작업의 의미를 이달 개관하는 신생 갤러리 공간에서 선보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다. 갤러리 관계자는 “작가의 작업 세계가 성급하게 소비되지 않고, 그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동행하는 역할을 지향할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4월 18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