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역사를 자랑하는 그래미상에서 K팝이 첫 상을 받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이 세계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상을 탔다.
그래미상 천장 깬 K팝
1일(현지시간)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상’ 사전 행사에서 골든은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지난해 영상 콘텐츠에 삽입된 노래 중 최고를 가리는 상으로 작곡가에게 주어진다. 골든 곡 작업에 참여한 이재, 테디, 24(본명 서정훈), 아이디오(이유한, 곽중규, 남희동)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클래식 음악으로 소프라노 조수미가 1993년, 음악 엔지니어 황병준이 2012·2016년 각각 수상한 적은 있지만 K팝 전문 음악가가 그래미상을 받은 건 이번이 최초다.
시상식에 오른 24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말한 소상 소감에서 “아쉽게 이 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이 모든 과정에 함께한 가장 큰 스승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K팝의 개척자’인 테디 형께 이 영광을 바친다”고 했다. 테디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힙합 그룹인 원타임의 멤버로 데뷔해 연예기획사 더블랙레이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음악인이다. 빅뱅, 투애니원, 블랙핑크 등의 음악을 제작하며 K팝의 세계화에 공헌했다.
골든은 그래미상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래미상은 본상 6개 부문과 장르 상 90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골든은 이 중 본상인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장르 상인 ‘베스트 팝 듀오’, ‘베스트 리믹스드 레코딩’, ‘베스트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포 비주얼 미디어’ 등에서도 후보에 들었지만 수상엔 실패했다.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APT.(아파트)’도 본상인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를 비롯해 장르 상인 베스트 팝 듀오 등 3개 부문의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상을 타지 못했다.
로제, 오프닝 무대 장식
K팝이 장르 상을 탄 것뿐 아니라 자체 곡으로 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미상은 1959년부터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가 매년 열고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이 투표해 최고 작품을 가리는데 K팝과 같은 미국 외 지역이나 유색인종의 음악에는 보수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BTS(방탄소년단)도 2021~2023년 3년 연속으로 장르 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엔 실패했다. 본상엔 제작에 참여했던 콜드플레이 앨범으로 2023년 수상을 노렸지만 직접적인 후보로 보긴 어려웠다.
올해 시상식에선 K팝을 찾기도 쉬워졌다. 로제는 K팝 최초로 그래미상 오프닝 무대를 맡아 관객들과 함께 아파트를 열창했다. 수상은 불발됐지만 K뮤지컬인 ‘어쩌면 해피엔딩’이 ‘베스트 뮤지컬 씨어터 앨범’에서, 하이브가 게펜레코드와 합작으로 만든 걸그룹인 ‘캣츠아이’가 ‘베스트 뉴 아티스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르는 등 K팝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전선도 넓어졌다. 캣츠아이가 다른 신인상 후보들과 합동무대를 선보이고 어쩌다 해피엔딩 배우들이 사전 행사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골든의 그래미상 수상 소식을 보도하며 “(K팝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장르의 오랜 갈증을 마침내 해소했다”고 평가했다.
골든과 아파트가 나란히 수상을 노렸던 올해의 노래는 ‘와일드플라워’를 부른 빌리 아일리시가, 올해의 레코드는 ‘루터’를 부른 켄드릭 라마가 받았다. 라마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이 상을 탔다. 대상 격이었던 올해의 앨범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배드 버니에게 돌아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장르 상인 영화음악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방송계 에미상, 음악계 그래미상, 영화계 오스카상, 공연계 토니상 등 4대 분야 최고상을 석권한 예술가를 뜻하는 ‘EGOT’가 됐다. EGOT로 이름을 올린 인물은 오드리 헵번, 우피 골드버그, 엘튼 존 등이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