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03일 07:3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오창석 무궁화신탁 회장이 SK증권 등 대주단으로부터 무궁화신탁 경영권 지분을 담보로 1500억원을 빌린 건 2023년 6월이다. 이로부터 5개월 뒤 이 주식담보대출엔 기한이익상실(EOD) 요건이 발생했다. 무궁화신탁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300% 아래로 떨어지면서다. 무궁화신탁의 재무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면 담보권이 실행돼 오 회장은 경영권을 잃을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게 건설공제조합이다. 건설공제조합은 EOD가 발생한 지 한 달만에 무궁화신탁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300억원을 투자했다. 전체 운용자산이 4조원, 대체투자자산이 6000억원 수준에 불과한 건설공제조합이 이런 부실 회사에 직접 투자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건설공제조합의 자금 지원에도 무궁화신탁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10개월여 만에 무궁화신탁 NCR은 125%대로 떨어지며 EOD 요건이 다시 발생했고, 금융당국의 경영개선 명령으로 이어졌다.
'위기의 오 회장' 구한 건설공제조합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위기에 빠진 오 회장을 구하기 위해 지원군으로 나섰던 건설공제조합은 300억원을 고스란히 날릴 처지에 놓였다. 오 회장의 부실 경영으로 무궁화신탁이 완전히 망가지면서다. SK증권 등 대주단 주도로 무궁화신탁의 경영권 지분 매각이 진행되며 건설공제조합을 비롯해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PE) 등 RCPS 주주들도 매각에 참여하는 방안을 재작년부터 추진 중이지만 인수 후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SK증권은 건설공제조합 등 RCPS 투자자들에게 RCPS 매각 후 회수한 투자금 전액을 후순위 인수금융으로 다시 대는 조건을 제시하며, SK증권이 측근 사모펀드(PEF)에 자금을 출자하고 무궁화신탁을 인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건설공제조합 입장에선 이런 식으로 매각이 성사되면 무궁화신탁 익스포져가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다.
건설공제조합 당시 이사장은 박영빈 전 경남은행장이었다. 우리투자증권 부사장과 동성그룹 부회장을 지낸 그는 조합 역사상 처음으로 공모 절차를 밟아 선임됐다. 무궁화신탁 투자 책임자는 임섭 자산운용본부장(CIO), 임세열 대체투자팀장이다. 임 팀장은 2023년 말 무궁화신탁 RCPS 투자를 담당하고, 이듬해 초 무궁화신탁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됐다. 건설공제조합은 주요 건설사들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조합으로 국토교통부의 감독을 받는 기관이다. 건설공제조합 관계자는 "투자 당시 무궁화신탁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투자는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집행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재무구조 악화로 고사 직전에 내몰린 무궁화신탁에 건설공제조합이 300억원 규모의 RCPS를 직접 투자한 것 자체가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부실 금융기관이었던 무궁화신탁이 발행한 RCPS를 인수하는 건 웬만한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들도 엄두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리스크가 크고 난도가 높은 투자"라며 "대체투자 규모가 6000억 수준인 건설공제조합이 전체 대체투자 자산의 5%를 무궁화신탁 RCPS에 직접 투자했다는 건 굉장히 과감한 결정이자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건설공제조합이 보유한 RCPS는 2021년 키스톤PE와 홍콩계 크레딧 전문 투자사 SC Lowy가 각각 300억원씩 투자해 보유한 무궁화신탁 RCPS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2021년 키스톤PE와 SC Lowy가 투자할 당시엔 무궁화신탁의 재무구조는 2023년과 비교하면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당시엔 현대자산운용 인수 대금 마련 목적으로 자금을 유치했다. 반면 건설공제조합의 투자는 재무구조가 망가진 무궁화신탁을 지원하고, EOD 위기에 처한 오 회장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조합원들의 자산을 굴리는 공제조합이 단행할 투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건설공제조합 지원군으로 나선 농협건설공제조합이 투자 실패로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초 부임한 이석용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의 친정인 농협중앙회가 지원군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SK증권 주도로 추진하는 무궁화신탁 매각 작업의 주요 인수 후보가 농협중앙회로 알려졌다. 농협중앙회는 오 회장의 지분을 사와 무궁화신탁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연결 고리로 이석용 이사장이 지목된다. 이 이사장은 199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농협중앙회 기획조정본부장을 거쳐 농협은행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일각에선 그간 무궁화신탁과 농협의 유착관계로 쌓인 무궁화신탁 부실 채권 문제가 터지기 전에 농협중앙회가 무궁화신탁을 인수해 이를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오 회장은 무궁화신탁 인수 이후 농협 출신 인사들을 적극 영입했다. 농협은행 서초지점장을 지낸 원석희 전 부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농협은 무궁화신탁의 '돈줄' 역할을 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농협의 부동산 신탁 대출 잔액(51조6279억원) 중 무궁화신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3.1%(11조905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채권(고정이하여신) 중 24.7%가 무궁화신탁의 몫이었다.
농협은 과거 PEF를 압박해 무궁화신탁에 투자를 종용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PEF 운용사의 주요 출자자(LP)인 농협중앙회는 오 회장이 무궁화신탁을 인수한 뒤 복수의 PEF에 무궁화신탁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했다. 무궁화신탁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키스톤PE가 2021년 300억원 규모의 RCPS를 인수한 것 외에는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당시 농협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궁화신탁 투자를 검토해보라고 요청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손창배 키스톤PE 대표도 농협중앙회 출신이다. 손 대표는 농협중앙회에서 줄곧 IB 업무를 담당하다가 농협은행 PE부문 단장과 NH투자증권 PE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무궁화신탁과 SK증권 사태의 조력자로는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도 등장한다.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은 지난해 9월 SK증권의 대주주인 J&W파트너스와 김신 전 SK증권 대표(현 SKS PE 부회장)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진행한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재조달)에 참여했다. 지난해 9월 하나은행 등 대주단은 J&W가 일으킨 612억원 규모의 인수금융을 750억원으로 증액하고, 만기를 2년 연장해줬다. 당시 대주단이 담보로 잡고 있던 SK증권 지분(19.6%)의 시가 기준 가치(약 645억원)가 증액된 대출 금액보다도 낮은 상황에 이뤄진 리파이낸싱이었다.
국토부 감독을 받는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은 운용자산이 1조원 수준인 곳으로 대체투자에 적극적인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고위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에 참여한 건 이례적인 투자라는 얘기가 나온다. PEF 출자 경험이 거의 없는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은 SK증권의 자회사인 SKS PE가 주도한 블룸에너지 투자를 위해 펀드를 조성할 때 LP 출자를 하기도 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이 조합원들의 회비를 모아 굴리는 공제조합 자금이 '눈먼 돈'처럼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며 "국토부가 지금까지 감독 대상인 중소형 공제회에 대한 감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도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