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향한 길에서 삶의 눈을 뜨게 하는 연극 '취리히 여행'

입력 2026-02-09 10:14
수정 2026-02-09 10:15
연극 <취리히 여행>은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조력 자살'을 다룬다. 100세 시대, 병든 채 긴 세월을 버텨야 하는 노년에 대한 공포는 이제 우리 모두의 현실적인 고민이 됐다. 어떤 작품은 이를 아름다운 이별로, 또 다른 작품은 치열한 논쟁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취리히 여행>은 이 무거운 주제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취리히 여행>은 프랑스어권 희곡을 꾸준히 한국에 소개해온 프랑스인 감독 까띠 라뺑의 극단 ‘프랑코포니’가 선보인 작품이다. 2009년 창단 이래 매년 완성도 높은 공연을 올려온 극단은 ‘조력 자살’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치밀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무대 위에 올렸다.



비장함을 깨뜨리는 유쾌한 반전

주제가 주제인 만큼 극장의 공기가 무거울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불치병 환자인 주인공 ‘플로랑스’가 꿈속에서 죽음을 연기하는 첫 장면부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줄 알았던 그녀를 친구 '이자벨'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흔들며 깨우는 순간, 죽음은 거창한 의식에서 흔한 장난처럼 가벼워진다. 플로랑스의 절친인 이자벨은 주변 인물 중 유일하게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과 유머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환하게 밝힌다.

공간이 바뀌며 열리는 마음의 문

극은 플로랑스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취리히로 떠나는 여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아낸다. 여정에는 ‘이자벨’뿐만 아니라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 ‘뱅상’, 모자지간에 소외됐던 며느리 ‘마틸드’가 동행한다.



집, 자동차 안, 마지막 저녁 식탁, 마침내 도착한 취리히 조력 자살 센터까지. 여행에서 흔히 만나는 익숙한 공간들은 '죽음을 앞둔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소중한 이와의 마지막 여행을 망치지 않으려면 밝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숨길 수 없는 슬픔이 뒤섞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비로소 대면하게 된다. 연극 특유의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가 오히려 인물들의 뒤틀린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중간중간에 흐르는 음악도 주인공들의 위태로운 희망을 지탱한다. 플로랑스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부르는 나킹 콜(Nat King Cole)의 'Smile'을 비롯해, 여정 중에 흐르는 'Stand By Me', 'This Is My Life' 같은 올드 팝송들은 슬픔 속에서도 끝내 삶의 존엄과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애틋하게 대변하는 듯하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이 극의 가장 극적인 지점은 아들 뱅상의 변화이다. 엄마의 선택을 거부하던 그는 여행을 통해 그녀의 주체적인 선택을 존중하게 되는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엄마에게 의존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며느리 마틸드는 시어머니의 그림자 아래 자신을 거부하는 남편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자 관계를 제3의 시선으로 관찰한다.



마침내 “엄마 없이, 엄마 덕분에”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뱅상의 마지막 독백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죽음은 한 존재의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 또 다른 성장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죽음을 향한 여행은 사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삶이 얼마나 충만한지를 깨닫게 하는 여행이 된다는 반전을 선사한다.



극 중 '까치'를 상징하는 존재도 흥미롭다. 때론 죽음으로 안내하는 저승사자 같으면서, 때론 주인공의 내면을 투영하는 친구 같은 캐릭터로 등장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플래시백 연출이 인물들의 흔들리는 마음과 복잡한 내면에 설득력을 더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연극은 조력 자살을 주인공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활기차게 그려내면서도, 결코 이를 미화하거나 가볍게 다루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극은 사후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조력 자살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짚는다. 조력 자살이 개인에게는 존엄을 지키는 자유의지의 발현이 될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노인은 짐이 된다’는 식의 부정적 인식을 고착시킬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산 자는 죽은 자의 눈을 감기고 죽은 자는 산 자의 눈을 뜨게 한다.” 결국 <취리히 여행>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가깝다. 죽음을 불안하게 기다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충만하게 채울지 고민하게 만든다. 무대 위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눈을 뜨듯, 관객 역시 극장을 나서며 스스로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공준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