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희토류 되나"…러시아산 우라늄에 발목 잡힌 유럽

입력 2026-02-02 15:34
수정 2026-02-02 15:35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가스 수입을 전면 차단하기로 하는 등 강도 높은 ‘에너지 제재’를 단행했지만 농축 우라늄만큼은 여전히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내 대체 공급망이 부족하고 러시아산 우라늄만큼의 가격 경쟁력을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던 것처럼, 러시아가 우라늄 수출을 새로운 ‘무기’로 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전쟁 이후에도 러 우라늄 수입량 늘어 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은 농축 우라늄 수요의 23%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 조사 결과 러시아산 핵연료봉 수입액은 2021년 2억3900만유로에서 2022년 2억6640만유로, 2023년 7억1780만유로, 2024년 5억2670만유로로 러우전쟁 이후 오히려 확대됐다.

미국은 2024년 러시아 및 러시아 기업이 생산하는 농축 우라늄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률을 시행했다. 2028년까지 러시아산 핵연료 수입을 전면 차단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도 203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산 핵연료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회원국 간 견해차와 투자 유치 난항 등으로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특히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러시아 원자로를 사용하는 동유럽 국가는 대체 연료 확보가 어렵다며 제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전력의 75%를 원전에서 충당 중인 헝가리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과 협력해 신규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체코, 슬로바키아 등은 공급 차질에 대비해 오히려 러시아산 핵연료 재고를 늘렸다. ◇ 대체 공급망 확보 난항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공을 들이고 있는 유럽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당장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을 대체할 공급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세계 원자력협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농축 우라늄의 주요 공급국으로서 로사톰이 글로벌 시장의 44%를 차지한다.

유럽 에너지 기업은 우라늄 자립을 위해 설비 투자에 나섰다. 프랑스 국영 원자력 에너지 기업 오라노는 17억유로를 들여 프랑스 남부 트리카스탱 우라늄 농축 시설을 확장하고 있고, 영국의 우라늄 농축 회사 유렌코는 네덜란드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다.

이들 회사는 약 500만SWU(분리작업단위)의 생산 능력을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해당 물량이 시장에 나오려면 2032년은 되어야 한다고 FT는 짚었다. 그사이에 새로운 원전 프로젝트들이 가동될 경우 공급 부족은 계속될 수 있다.

싱크탱크 브뤼겔의 밴 맥윌리엄스 분석가는 “우라늄 생산능력 확충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순히 시장에 나가 다른 공급자를 바로 찾을 수는 없다”고 FT에 설명했다.

미국과 물량 경쟁도 해야 한다. 2028년 러시아산 우라늄 전면 금수 조치를 앞둔 미국 기업은 발 빠르게 신규 우라늄 농축액 물량을 선점했다. 마에스 오라노 최고경영자(CEO)는 “계획된 신규 공급 물량의 상당 부분은 이미 미국 바이어들이 차지했다”고 전했다. ◇ ‘에너지의 무기화’ 우려유럽의 러시아 우라늄 의존이 계속되면 러시아가 우라늄을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리스 슈흐트 유렌코 CEO는 “러시아는 농축 사업을 지정학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에스 CEO 역시 현재 러시아산 우라늄 의존도를 중국산 희토류에 빗대며 “이는 마치 풍력 터빈이나 전기차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중국에 의존하는 것과 강력한 평행이론을 이룬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민간 발전사들은 러시아의 손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러시아산 우라늄은 유럽산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이 끝나면 다시 값싼 러시아산 연료를 쓸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발전사는 유럽 에너지 기업과 적극적으로 계약하지 않는다는 관측도 있다.

테바 마이어 국제관계전략관계연구소(IRIS) 연구원은 “원전 운영사들 사이에서는 언젠가 러시아와 정상 관계로 돌아갈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서방 기업과 장기 공급 계약을 맺기를 꺼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