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전용 극장 넘어 제작 극장 될 것"

입력 2026-02-02 10:37
수정 2026-02-02 14:19
요즘 뮤지컬 전용 극장은 여성용 화장실 칸수가 남성용보다 훨씬 많다. 뮤지컬 관객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고려한 설계다. 사소해 보여도 극장의 이러한 배려는 뮤지컬 장르에 대한 긍정적 경험으로 이어진다. 20년 전 뮤지컬 극장의 표준을 세운 샤롯데씨어터가 아니었다면, 화장실 앞 여성 관객들의 기다림은 지금보다 더 길었을지 모른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을 제치고 유동인구 1위로 올라선 잠실역. 이곳 3번 출구에서 조금만 걷다 보면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 극장 샤롯데씨어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2006년 샤롯데씨어터 개관 전까지만 해도 인적 드문 공원에 불과하던 곳을 롯데그룹이 450억원을 투입해 지금의 문화 랜드마크로 탈바꿈시켰다. 2001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대성공을 거두며 뮤지컬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던 때였다. 개관 프로젝트 당시부터 샤롯데씨어터를 지켜온 윤세인 롯데컬처웍스 Live사업 부문장을 만나 한국 뮤지컬 60년 역사를 함께 써 내려온 샤롯데씨어터의 20년 기록과 다음 페이지를 들여다봤다.



샤롯데씨어터의 역사는 '최초'와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한국 뮤지컬 시장은 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개관 준비 당시 해외 공연 시장을 참고해 여성 화장실 칸수를 대폭 늘렸죠. 처음 극장 문을 열었을 때 화장실 자랑을 많이 했는데 다들 놀라워했어요." 화장실은 일례일 뿐이다. 현재 뮤지컬 시장의 표준이 된 '3개월'의 공연 기간 역시 샤롯데씨어터와 공연 제작사 측의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정착된 공식이다.

최근에는 한국 뮤지컬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성과도 이곳에서 나왔다. 2024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국내 초연한 뮤지컬 '알라딘' 이야기다. "'알라딘'은 지난 20년 사이 단일 시즌 기준으로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한 작품이에요. 작품 자체가 좋다면 7개월의 장기 공연도, 19만원(VIP석 기준)에 달하는 고가의 티켓 가격도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증명한 거죠. 그런 면에서 샤롯데씨어터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샤롯데씨어터는 한국 뮤지컬 극장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개관 후 지금까지 53개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누적 관객 650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발권된 티켓 길이는 971.5㎞로,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다. 윤 부문장은 "적절한 객석 규모(1260석)와 국내에서 가장 짧은 무대와 마지막 열 간 거리(1층 기준 23m) 덕분에 관객 몰입감이 독보적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백스테이지도 배우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설계했다. 대기실 문을 열면 무대와 곧장 연결된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면 메인스트림(주류)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있나 봐요. 배우나 제작진 사이에서 '샤롯데 무대에 서면 성공했다'는 말도 있어요."(웃음)

샤롯데씨어터는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장소를 넘어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작품과 어울리는 향기로 관객을 맞이하고, 4층에선 뮤지컬 펍 '커튼콜 인 샬롯'을 운영하며 작품 맞춤형 메뉴를 선보고 있다. "공공 극장은 아니지만 국내 최초 뮤지컬 전용 극장의 사명감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하면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사랑받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샤롯데씨어터가 뮤지컬 팬들에게 즐거운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화려한 시설과 서비스는 어디까지나 조연이다. 관객이 극장을 찾는 건 결국 무대 위 좋은 공연을 만나기 위해서다. "샤롯데씨어터의 가장 큰 경쟁력은 관객 눈높이에 맞는 완성도 있는 작품에 있어요. '헤드윅'처럼 마니아층이 많은 작품과 뮤지컬 입문자를 위한 대중적인 작품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고 있어요. 극장이 좋은 작품은 담아내고, 그렇지 않은 작품은 선택하지 않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지금의 위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샤롯데씨어터는 현재 공연 중인 '킹키부츠'를 비롯해 올해 '몽유도원', '프로즌'을 차례로 무대에 올린다. 오는 5월에는 극장 문을 잠시 내리고 리뉴얼에 들어간다. 개관 20주년을 맞아 객석을 중심으로 보수 작업을 하지만 샤롯데씨어터 특유의 클래식한 인테리어는 유지한다. 일부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티켓 QR코드 리더기는 도입하지 않을 예정이다. "세상이 변해도 샤롯데씨어터만큼은 '클래식함'을 유지하면 좋겠어요. 인공지능(AI)이나 기계가 점점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지만 극장이라는 곳은 본연의 모습을 잘 지키는 게 오히려 관객에게 선물이지 않을까요?"

이르면 내년 자체 제작한 뮤지컬도 대중에 처음 공개할 계획이다. 그간 일부 공연에 투자해오던 것을 넘어 독자적인 작품을 기획·제작하는 '제작 극장'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저희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좋은 공연을 선보이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에서 완벽하게 행복한 하루의 배경으로 기억되는 것이에요."

글=허세민 기자, 사진=문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