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대신 AI가 채점…AI 조교·선배도 등장

입력 2026-02-01 17:36
수정 2026-02-02 00:20
서울대 수리과학부 조교 A씨는 지난 학기 열린 한 교양수업에서 시험지 채점을 단 한 장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스캔해 인공지능(AI)에 업로드한 게 전부다. 그는 “예전에는 학생들이 똑같은 계산 실수를 해도 사람이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지만 지금은 AI가 해당 오답을 그룹화해 일괄적으로 감점 처리한다”며 “밤새 채점해야 하던 수고로움이 싹 사라진 데다 학생들의 이의 제기 건수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 주요 대학이 과제 채점부터 수업 질의응답, 전공 로드맵 설계 등 교수·학습 전반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강의 보조 수준을 넘어 교수와 조교가 맡던 역할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최근 ‘AI 부정행위’ 사건 이후 학생은 못 쓰게 하면서 교수만 편하게 수업하려는 게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과 함께 조교 일자리 축소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I가 퀴즈 채점…학생 피드백까지30일 연세대에 따르면 연세대 교수학습혁신센터는 올해 1학기부터 AI 자동 채점 도구인 그레이드스코프를 정식 도입한다. 2024년 11월 첫 도입 후 1년여간 시범 운영했다. 그레이드스코프는 미국 에듀테크 기업 턴잇인이 앤스로픽의 생성형 AI인 클로드에 기반해 제공하는 AI 채점 도구다. 교수가 설정한 채점표를 기준 삼아 객관식뿐 아니라 주관식 답안도 자동 채점하고 피드백을 생성해 준다. 연세대는 한 학기 열리는 5500여 개 강좌 중 약 200개 강좌에서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객관식 문항에서 기존 OMR 채점을 대체하는 정도로 쓰이지만 올해부턴 주관식 문항까지 적용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서울대는 2021년부터 교수학습개발센터를 중심으로 그레이드스코프를 운영해 왔다. 지난해 교양수학, 현대기하탐구 등 이공계 과목에서 활용됐다. 서울대 수리과학부가 27명의 채점 조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0%가 업무량이 기존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고려대는 ‘AI조교’와 ‘AI선배’ 등 다양한 AI 기반 교수·학습 솔루션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AI조교는 지난해 2월 실시한 신입생 대상 기초학력 진단 평가에 따라 맞춤형 학습 처방을 제공하고 학생 질문에 답변하는 기능을 갖췄다. 2020년 도입된 AI선배는 졸업생 28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초개인화 전공·진로 수강 로드맵을 제안한다. ◇조교 일자리 축소 우려도AI 교수·학습 도구 확산을 놓고 논란도 거세다. 이들 대학에서 AI 부정행위 사건이 터지면서 일부 교수가 학생들의 AI 활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과제에 AI를 쓰면 제재받는데 교수 채점과 조교 대체에 AI를 활용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서울대 재학생 김모씨(24)는 “학생은 못 쓰게 하면서 교수만 편하게 일하려는 게 얄밉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며 “AI가 채점 실수라도 하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말했다.

조교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연세대 재학생 이모씨(22)는 “조교 장학금으로 부족한 학자금을 메우는 학생이 적지 않은데 일자리가 줄어들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연세대 측은 이에 대해 “등록금 일정 비율을 대학원생 장학금으로 지출해야 하는 교육부 규정에 따라 조교 채용 인원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 대학 교육의 근본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유재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은 “기존 주입식 교육 방식으로는 AI 도입에 따른 저항과 부작용을 모두 해소하기 어렵다”며 “AI와 협업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갈 새 교육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리/김다빈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