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부터 강원도의 한 폭력조직에서 활동해 온 오모씨(27)는 불법 홀덤펍과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매달 수천만원을 벌고 있다. 오씨의 SNS에는 그가 소유한 외제차 세 대와 현금 다발 사진이 게시돼 있다. 오씨는 “고등학생들로부터 ‘형님 밑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메시지가 자주 온다”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조직에 들어오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10대와 20대가 조직폭력 세계의 새로운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처럼 폭력과 협박을 앞세운 금품 갈취가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 등 경제범죄에 뛰어드는 ‘젠지(GenZ·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조폭’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범행 대상이 특정 업주나 유흥가를 넘어 불특정 다수 시민으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범죄의 사회적 위험성이 과거보다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늘어나는 1020조폭1일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20대 관리 대상 조직폭력배(조폭)는 777명으로, 2021년(601명)보다 29.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조폭 인원은 5197명에서 5627명으로 8.3% 늘었는데, 10·20세대의 증가 폭이 훨씬 컸다.
지난해 기준 10대와 20대가 전체 조폭 인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8%로, 4년 전(11.6%)보다 2.2%포인트 상승했다. 조폭 100명 중 10대와 20대는 14명 정도인 셈이지만, 범죄 현장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그보다 훨씬 크다. 기존 조직원들이 고령화하면서 실제 범행을 주도하는 세대가 젊은 층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조폭 3210명 가운데 10·20대는 1282명으로,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검거된 ‘신남부동파’는 조직원 34명 가운데 20대가 27명으로 전체의 84%에 달했다. 최재호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3팀장은 “신남부동파는 노쇠화한 기존 조직에 젊은 세대를 유입해 조직을 재건, 확장하려 했다”며 “17세에 가입해 19세에 검거된 조직원도 있었다”고 말했다.‘돈 되는 경제범죄’가 新수익원과거의 ‘전통 조폭’은 유흥업소를 상대로 상납금을 요구하거나 불법 사채업을 영위하며 고리의 이자를 뜯어내는 방식 등으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 강화와 CCTV가 보편화하면서 민간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며 금전을 갈취하는 방식의 범죄는 점차 사라지는 분위기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 조폭 범죄가 코인 사기, 도박 사이트 운영 등 비대면 경제범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검거된 조폭 3210명 중 803명(25%)이 사기, 737명(23%)이 사행성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금품 갈취는 51명(1.6%), 불법 사채는 79명(2.5%)에 그쳤다. 경기남부경찰청 소속의 한 강력계 경위는 “조직에 소속돼 있는 것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젊은 조직원끼리 소규모 조직을 꾸려 돈이 되는 온라인 범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태어나서 싸움을 한 번도 안 해 본 조폭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서울 금천구와 경기 광명시를 거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적발된 ‘진성파’는 불법 사업을 소규모 팀 형태로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간부 1명과 조직원 3~5명으로 구성된 각 팀은 대포 유심 유통, 돈세탁 등 수익성이 높은 지하경제형 사업을 주도했다. 진성파는 고등학교 ‘짱’과 운동선수 등을 포섭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조직을 각 팀의 불법 수익을 상납받아 조직 운영자금으로 활용한 ‘프로젝트형 폭력 조직’으로 규정했다.계파 떠나 조직원끼리 연대도젠지 조폭의 또 다른 특징은 계파를 가리지 않고 또래 조직원끼리 각종 범행에 나선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기보다 불법 사업에 수완이 있는 조직원을 ‘보스’로 여기며 따르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강원경찰청이 검거한 대포통장 유통 조직은 강원 광주 대전 울산 등 서로 다른 지역 출신들이 연합해 범행을 저지른 사례다. 이들은 캄보디아 스캠 조직에 대포통장 191개를 공급해 약 38억원의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등 피해를 야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인재 강원경찰청 피싱범죄수사계장은 “각 지역 조직원들이 돈을 목적으로 함께 범행한 것”이라며 “최근에는 조폭들의 범행이 피싱 영역에서 빈번하게 나타나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강력한 조기 개입 시급”국내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해외로 건너가는 조폭도 적지 않다. 공권력 부패가 만연한 국가에서는 뒷돈을 주고 경찰 단속을 피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이동이다. 지난해 서울구치소에서 교도관에게 뇌물을 건네고 독방을 제공받아 논란이 된 수용자는 폭력조직 ‘상계파’ 조직원으로, 과거 캄보디아에서 8600억원 규모의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총책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에서 조폭이 직업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SNS를 통해 미화된 조폭의 모습이 물질만능주의와 결합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불법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젠지 조폭 증가 흐름을 방치하면 우리 사회에 더 큰 위협이 되는 전문화된 성인 조직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젊은 층의 폭력조직 진입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조기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