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옳은 길에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의 ‘대도무문(大道無門)’ 붓글씨 액자를 걸어두는 게 유행이었다. 하나회 군부세력을 척결하고 문민정부 시대를 연 업적은 이제 거의 잊혀진 기억이 됐다. 최근 YS시대를 다시 끄집어낸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돼 정치권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잊혀진 대통령, 김영삼의 개혁시대’를 만든 이재진 감독(사진)에게 ‘왜 하필 지금 김영삼인가’를 물었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 때문”며 “놀랍게도 김 전 대통령의 행보를 제대로 조명한 영상물이 단 한편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의 삶은 주류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던 YS의 궤적과 닮았다. 한양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ROTC로 임관, 육군 전방 사단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한 때 태권도 선수나 체육학 교수를 꿈꿨지만 영화에 푹 빠지면서 인생을 바꿨다. 전역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넘어가 컬럼비아 칼리지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귀국해 시나리오 작가, 배급사 유로픽쳐스 대표 등 영화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했다. 최근까지 숭의여대에서 영상제작과 겸임교수를 맡았다. 독서광인 그에게 역사는 콘텐츠 제작의 좋은 소재였다. ‘김영삼의 개혁시대’는 감독으로서 첫 입봉작이다.
YS 서거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 자취를 더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화 제작비 2억원은 전액 이 감독 사비로 댔다. 그는 “제작비를 사전에 모으는 펀딩이 어려웠다”며 “영화 산업의 논리로 따지면 YS 다큐는 돈 안되는 소재였다”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열혈 팬덤이 없다는 것이 흥행에 있어선 단점이었다.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이 감독의 외로운 작업은 서울 상도동 김영삼 민주센터의 문을 두드리며 해결됐다. 제작비를 다 떠안은 이 감독의 진심이 여럿을 움직였다.
센터에서 아카이브 소장 자료를 이 감독에게 제공했고 김덕룡, 정병국 등 옛 상도동계 원로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도왔다. 김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도 인터뷰에 응했다. IMF 금융위기와 아들 비리 연루 등 김 전 대통령 재임시기 그늘진 역사도 비교적 균형있게 담으려 했다.
질문은 왜 지금 그를 기억해야 하는가로 돌아왔다. 이 감독은 미국에 있을 당시 국부(國父)로 추앙할 만한 대정치가들이 적지 않아 부러웠었다고 한다. 그는 “YS는 단순히 정치를 생업으로 삼는 ‘폴리티션(Politician)’ 이 아닌 역사의 방향을 바꾼 ‘스테이트맨(statesman)’으로 재평가돼야 한다”고 했다.
이 감독의 목표는 두 개다. 우선 손익분기점인 관람객 7만명을 넘기는 것. 그는 “한국 현대사의 거목 10인을 선정해 다루는 다큐 시리즈 ‘거인의 어깨’를 기획하고 있다”며 “제작비가 회수되는대로 바로 다음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2030 세대가 더 많이 봐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2030 청년들은 극단적 진영논리에 휩쓸리는 요즘의 정치 논리만을 경험했을 겁니다. 우리 역사를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 스스로 민주화를 쟁취한 자랑스런 역사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종필 기자/사진=최혁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