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연 한번 보려면 서울까지 왕복 4시간씩 움직였어야 했는데, 평택에서 임윤찬과 정명훈 연주를 듣다니 꿈만 같네요.”
지난 30일 경기도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일대는 클래식 공연 열기로 들썩였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대공연장(1318석)과 소공연장(305석)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인 평택아트센터가 정식 개관하면서다. 총사업비 1301억원이 투입된 평택 최대 규모의 공연장이다. 평택아트센터는 이날 개관 공연으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지휘자 정명훈, 478년 역사의 독일 명문 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내한 무대를 야심 차게 선보였다. 임윤찬은 특유의 거침없는 타건과 대단한 집중력, 긴 호흡으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에 담긴 다채로운 감정을 뿜어내면서 관객의 감탄과 환호성을 불러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최초의 수석 객원지휘자인 정명훈은 섬세한 지휘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의 활기와 웅장한 울림을 전면에 펼쳐내며 개관을 축하했다.
앞으로 평택에서도 서울 못지않은 양질의 문화예술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신호탄과도 같은 공연이었다. 평택시는 ‘한국 반도체 사업의 심장’으로 불리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고덕국제신도시 등 대규모 산업단지와 택지 개발이 이뤄지면서 위상이 높아진 도시다. 정장선 평택시장은 “평택은 첨단산업을 통해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국제도시”라며 “이처럼 인구 유입, 성장 속도가 빠른 지역일수록 문화예술 같은 주민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이 제대로 뒷받침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 평택이 제조업만 존재하는 황폐한 도시가 아니라 ‘살기 좋은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업 넘어 문화의 도시’로…평택아트센터 첫발
이날 경기 평택시 고덕로 평택아트센터에서 열린 개관식에는 정 시장과 이상균 평택시문화재단 대표를 비롯해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단장, 정재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이승환 KBS교향악단 사장, 이현정 LG아트센터 대표, 박선희 GS아트센터 대표, 박현정 클래식부산 대표 등 국내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가 총출동했다. 이상균 대표는 “평택아트센터는 평택이 성장 도시를 넘어 ‘문화의 도시’로 나아갈 것이란 의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자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열망이 하나로 모인 결정체”라며 “세계적인 작품들과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공연들을 꾸준히 발굴해 향후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박산중앙공원 안에 자리한 평택아트센터는 ‘평화의 숲(Peace Forest)’을 핵심 콘셉트로 설계됐다. 곡선형 외관, 유리 파사드를 도입해 주변 경관과의 시각적 연속성을 높이고,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교향악, 오페라, 뮤지컬 공연 등이 주로 열리는 대공연장은 반사음이 풍부해 대체로 좋은 음향을 구현한다고 알려진 슈박스(구두상자)형 구조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슈박스형 홀은 통상적으로 긴 직육면체 모양을 띠고 있는데, 평택아트센터는 홀 후면 반사음을 강화하기 위해 객석의 중앙부를 더 넓게 설계했다. 여기에 자작나무 패널, 곡면 천장, 저주파 보강 시스템 등을 탑재해 공연 장르에 따라 최적화된 음향 환경을 조성하도록 했다.
백건우부터 ‘어쩌면 해피엔딩’까지 …화려한 라인업 선보여
평택아트센터는 올해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먼저 오는 3월 국립오페라단이 이끄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무대에 오른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뱅상 위게가 연출을 맡는다. 얍 판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4월)과 정명훈 지휘의 KBS교향악단(8월) 공연도 예정돼있다. 9월엔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데뷔 70주년 기념 리사이틀도 만나볼 수 있다.
4월엔 K뮤지컬 최초로 토니상 6관왕의 새 역사를 쓴 ‘어쩌면 해피엔딩’이 찾아온다. 2016년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국 고물이 된 두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12월엔 재즈 디바 나윤선이 공연을 열고 청중을 만난다.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공연 단체들도 평택을 찾는다. 3월 미국의 재즈 거장 윈턴 마살리스가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를 채운다. 이어 5월엔 영국 극단 1927이 연극 ‘플리즈 라이트 백(Please Right Back)’을, 6월엔 영국 시어터 리가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The Nature of Forgetting)’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