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29일(현지시간)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하면서 최근의 고환율 상황에 대해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구두 경고에 이어 미국 정부가 공식 문서로 원·달러 환율 수준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발표한 ‘주요 교역상대국의 거시경제·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조건 중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기준을 넘어선 영향으로 분석된다.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 동향과 관련해 “2025년 말 원화는 한국의 강력한 경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게 추가로 약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앞서 베선트 장관이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만난 직후인 지난 14일 원화 약세에 대해 시장에 경고한 내용과 같은 메시지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환율보고서가 특정 국가의 환율 수준을 평가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특히 2025년 하반기는 이번 평가 대상 기간(2024년 7월~2025년 6월)이 아니다”고 했다.
미국 재무부가 원화 약세를 공개 거론한 것은 외환시장이 불안정하면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가 지연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날보다 13원20전 오른 1439원50전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미국 재무부 보고서보다 케빈 워시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이사가 차기 Fed 의장으로 지명될 것이라는 소식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대미투자에 불똥 튈라'…원화 약세 또 경고한 美
한국 외환시장 변동성 지속 땐, 3500억弗 대미투자 악영향 판단 미국 재무부가 29일(현지시간) 발표한 ‘주요 교역상대국 거시경제·환율정책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 수준에 대해 “한국의 강한 경제 펀더멘털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경고한 내용이다. 이번 보고서의 평가 기간(2024년 7월~2025년 6월)이 아니라 작년 말 환율 수준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2015년 무역촉진권한법(TPA) 시행 이후 재무부가 반기마다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 우리나라의 환율 수준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 ‘약(弱)달러’ 원하는 美 재무부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지난 14일 “최근 원화 약세는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원화 시장에 구두 개입했다. 당시 이런 개입도 전례 없는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달러 ‘초강세’가 이어지면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대미 무역적자를 줄이는 한편 대규모 투자를 약속받은 미국도 유리할 게 없다는 위기감이 미국 정부 내에서 커진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대미 투자가 늦어질 조짐을 보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SNS를 통해 “한국의 상호관세와 자동차 품목관세 등을 25%로 다시 인상하겠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번 보고서에 처음 담긴 정부 투자기관 평가에서도 달러 약세·원화 강세를 원하는 미국 정부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가장 최근인 작년 11월 환율보고서에서 미국은 “다음 보고서부터 연기금 또는 국부펀드 같은 정부 투자기관을 활용한 경쟁적인 평가절하 여부 등을 점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이 국민연금을 동원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강했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는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
미국 정부는 “국민연금의 외화 매수는 해외 투자 다변화 목적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외환스와프는 2024년 4분기 원화 변동성이 확대된 시기에 원화 약세 압력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韓 외환 당국 개입 용인하나이번 보고서는 우리 정부 환율 정책을 평가하는 미국 재무부의 잣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 무역흑자 규모와 시장 개입 여부를 중점적으로 보던 미국이 국민연금 등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수단까지 종합적으로 따진다는 설명이다. 한국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도 과거엔 없던 내용이다.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약달러를 유도하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우려하냐”는 질문에 “달러 가치는 훌륭하다”고 발언하자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가 빠르게 하락했다. 다음날 베선트 장관이 “미국은 항상 강달러 정책을 고수해 왔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급격한 쏠림을 완화하려는 관리성 메시지 정도로 해석했다. 미·일 외환시장 공조와 한은의 금리 하향 종료 움직임에 “한두 달이 지나면 환율이 1400원 전후로 떨어질 것”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작년 말 장중 1480원을 넘은 환율은 전날 1426원30전까지 떨어졌다.
다만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26원30전)보다 13원20전 오른 1439원50전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매파적 인사로 평가받는 케빈 워시 전 Fed 이사가 유력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워시 전 이사가 Fed 의장이 되더라도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라며 “원화와 연동성이 큰 엔화도 강세 압력을 받고 있어 올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후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강진규/남정민/정영효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