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얼마든 주겠다" 미국서 난리 난 한국 회사…'역대급 잭팟'

입력 2026-01-30 17:34
수정 2026-01-31 01:23

미국 앨라배마에 터를 잡은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공장에 크리스마스 연휴는 없었다. 작년 12월 23일 이곳 근로자들의 얼굴에서 들뜬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작업자들은 300t에 달하는 525㎸(킬로볼트) 초고압 변압기를 공장 안까지 들어온 철로 위 기차에 싣느라 분주했다. 이곳은 미국 변압기 공장 중 유일하게 철로를 공장 안에 들인 곳이다. 그 덕에 배송 기간이 1주일 이상 단축됐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제때 납품만 해달라는 고객 문의에 철로를 깔았다”며 “5년 치 물량을 일정대로 만들기 위해 대다수 직원이 주말이나 연휴 때도 특근한다”고 말했다. ◇“추가 증설도 가능하다”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일진전기 등 한국 전력기기 4사가 미국 ‘인공지능(AI) 붐’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부른 ‘전력기기 슈퍼 호황’에 힘입어 전력기기가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어서다. ‘한국 빅4’는 여기에 좋은 품질과 빠른 납기, 확실한 애프터서비스(AS)를 앞세워 시장 장악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HD현대와 효성 등은 미국에 공장을 둔 덕에 관세 부담이 작은 것도 강점이다.

선두에는 HD현대가 섰다. 현재 미국 변압기 시장 점유율 20% 안팎으로, 미국 진출 15년 만에 1위에 올랐다. 효성중공업 역시 10% 수준의 점유율로 상위권에 올라 있다. LS일렉트릭과 일진전기를 더하면 한국 빅3의 미국 점유율은 40%가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강자인 지멘스와 GE버노바 등이 10% 수준의 점유율에 머무르는 사이 공격적인 증설에 나선 한국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앨라배마 공장에서는 증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HD현대는 이곳에 3000억원을 투입해 2028년까지 변압기 생산량을 연 150~180대로 지금보다 약 30~50% 늘리기로 했다. 유휴 부지가 더 있는 만큼 추가 증설도 가능하다.

미국의 변압기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데이터센터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여기에 전력을 댈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와 신재생에너지 단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지고 있어서다. 30년 이상 미룬 노후 전력기기 교체 수요가 겹친 것도 슈퍼 호황에 한몫했다. 강성수 HD현대일렉트릭 애틀랜타 법인장은 “현재 미국 전체 전력망 1300GW의 두 배에 달하는 2500GW의 전력망이 대략 2040년까지 새로 깔릴 것”이라며 “일감이 떨어질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안정성 높아 러브콜 이어져
‘K변압기’의 첫 번째 인기 비결은 품질이다. 변압기는 제품 특성상 안정성이 핵심이다. 한번 고장 나면 지역 전체에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미국 전력회사들이 아무리 값이 싸도 중국 제품은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다.

HD현대일렉트릭은 99%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변압기 제작을 현지인에게 맡기면서 한국의 섬세함도 함께 이식했다. 미국에서도 도제식 교육을 유지하고 있고,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입 직원 급여를 지역 평균보다 30% 이상 높은 시간당 20달러를 지급한다. 이를 통해 높은 납기 준수율과 낮은 불량률을 구축한 덕분에 보수적인 전력회사들의 마음을 샀다는 설명이다. 강진호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공장장은 “단순 불량도 1년에 한 건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며 “기존 거래 업체에 불만이 있는 전력회사들이 속속 갈아타고 있다”고 말했다.

효성중공업도 고객 주문이 몰리자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 증설 작업에 들어갔다. 2027년 증설이 끝나면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연간 130대에서 250대 이상으로 확대된다. 변압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공룡들의 놀이터였던 미국 변압기 시장의 주인공이 한국 업체로 바뀌고 있다”며 “K변압기가 없으면 미국은 ‘블랙아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앨라배마=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