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왠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린 적 없으신가요? 우리는 눈을 감기 전까지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고든칼리지(Gordon College). 숲과 연못이 어우러진 이곳에 공간 디자이너 정예나(Yena Jung)가 설계한 '저항으로서의 안식일(Sabbath as Resistance)' 학생센터가 들어섰다. 프로젝트명부터 강렬한 이 공간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속도'와 '효율'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무한 경쟁의 시대, 건축을 통해 '의도적인 멈춤'의 미학을 설파하는 정예나 디자이너에게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를 물었다.
Q. '저항으로서의 안식일'이라는 주제가 묵직하다.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A. 구약성서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의 동명 저서가 토대가 됐다. 그는 현대의 생산성 중심 구조를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체제에 비유한다. 우리는 더 많은 벽돌을 찍어내야 하는 노예처럼 끊임없이 성과를 강요받고, '불안'을 연료 삼아 달린다. 이 거대한 불안 시스템이 과연 우리를 올바른 곳으로 이끌고 있는지 멈춰 서서 반문하고 싶었다.
Q. 본인도 그런 '생산성 강박'을 느낀 경험이 있나.
A. 물론이다.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쉼조차 다음 노동을 위한 재충전, 즉 생산성의 도구로만 여겼다. 이 경험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성과와 효율, 시간의 상품화에 의해 형성된 현대 사회의 단면이라 생각한다. 'Sabbath as Resistance'는 이러한 불안을 원동력 삼아 작동하는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며, 쉼을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가치에서 출발하는 적극적인 저항으로 재정의한다. 이 프로젝트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을 설계했나.
A. 캠퍼스 내 코이 연못(Coy Pond) 인근 자연 속에 자리 잡은 '피난처'다. 내부는 크게 두 가지 질감으로 나뉜다. 침묵 속에 신과 대면하는 '고독의 공간', 그리고 학생 간의 교류(Koinonia)가 이뤄지는 '공동체의 공간'이다. 서로 다른 재료와 물성을 사용해 두 목적을 시각적으로 대비시켰다. 진입로 또한 단순히 이동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걷는 행위 자체가 쉼으로 향하는 여정이 되도록 설계했다.
Q. 물리적 공간은 시간 경험, 주의의 구조, 그리고 자기 인식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A. 'Sabbath as Resistance'의 관점에서 볼 때,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적극적인 매개체다. 브루그만이 말하듯 안식일은 긴급성과 생산성에 지배되지 않는 다른 시간성을 제안하며, 'sacred stasis(거룩한 정지)'라는 의미 있는 멈춤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번에 설계한 공간은 사용자의 신체적 리듬을 자연스럽게 늦추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 안에서 시간은 관리하거나 최적화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이고 머무를 수 있는 경험이 된다. 이러한 공간은 주의와 자각을 회복하게 하며, 쉼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존재감을 다시 인식하도록 이끈다.
Q. 3D 툴인 '블렌더(Blender)'를 활용한 설계 방식도 독특하다.
A.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한 건축 실험이기도 하다. 블렌더를 활용한 정교한 3D 모델링으로 공간의 질감과 빛, 시간의 흐름을 구현했다. 흔히 디지털 기술을 차가운 효율성의 도구로만 생각하지만, 예술과 결합하면 인간의 존엄성과 쉼을 회복하는 따뜻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저항'의 방법이 있다면.
A. 가장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인 실천을 제안한다. 하루 딱 15분만 타이머를 맞춰두고, 자연 속이나 조용한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목표도 없이 그 시간을 온전히 견디는 것이다. 처음엔 불안해서 자꾸 시계를 보게 될 텐데, 그 불편함 자체가 우리가 기계 부속품처럼 기능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증거다. 이 멈춤을 반복하면 내가 기계 부품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감각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저항'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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