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가격 문제였나'...빠르게 늘어나는 전기차의 비밀

입력 2026-02-04 08:01
수정 2026-02-04 08:03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김가흔(40) 씨. 가솔린 차량을 몰던 그는 올해 전기차로 갈아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국내외 제조사들이 올해 가격을 크게 낮춘 전기차 출시를 예고한 상황. 게다가 정부는 친환경차를 늘리기 위해 전기차 보조금을 더욱 확대했다. 그는 “지금이 전기차 구매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3000만원대의 금액대로 살 수 있는 전기차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이 사상 처음 20만 대를 돌파했다. 모처럼 반등에 성공하며 침체됐던 시장에 다시 활기가 도는 모습이다. 전망도 밝다. 올해도 전기차 판매량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다 싼 값에 출시하는 신차 효과와 더불어 정부 지원까지 늘어나며 내연기관차를 타던 많은 이들이 기존의 전기차로 차를 바꿀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전기차와 관련한 여러 불편사항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언제든 판매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가격 진입장벽 허물어져‘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최근 국내 전기차 시장을 관통했던 키워드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급증하던 전기차 수요가 크게 꺾이며 전기차 시장에는 늘 이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여전히 부족한 충전 시설과 배터리 화재 및 수명 논란이 불거지며 많은 이들이 전기차 구매를 꺼리게 했다.

2023년에 이어 2024년까지 2년 연속 국내 전기차 시장은 판매 부진을 겪으며 “아직 전기차 시대가 오려면 멀었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뤘다.

이런 맥락에서 업계에서는 지난해 역시 전기차 시장 불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었다. 이이 따라 작년 초만 해도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 생산량을 크게 줄이고 불편한 전기차 대신 친환경차 대세로 떠오른 ‘하이브리드’ 차량 출시에 열을 쏟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기차 판매량이 20만 대를 돌파,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판매가 예상 밖의 호조를 보인 것은 가격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기차 가격이 낮아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의 공습이다. 4000만원대에 살 수 있는 중국산 테슬라에 이어 지난해 초에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중국 BYD(비야디)가 한국에 상륙했다. 예컨대 테슬라의 경우 모델별 판매 순위를 보면 모델Y가 5만397대로 전년 대비 169.2% 급증하며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모델Y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주니퍼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분석했다.

비야디도 작년에 총 7278대(점유율 3.3%)의 전기차를 한국에서 팔며 단숨에 전기차 판매량 6위를 기록했다.

둘째는 정부의 보조금 확대다. 정부는 작년 개편안을 통해 전기차 보조금을 최대 580만원으로 책정했다. 2024년 650만원보다 70만원 낮췄으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보조금을 전액 받을 수 있는 전기차 가격 기준선(5500만원→5300만원)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테슬라 등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 국내 전기차 출시가격을 더 낮추기도 했다. 소비자들의 전기차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20년대 초반만 해도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월등히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 ‘비싸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작년에는 이런 공식이 완전히 뒤집어진 한 해였다”며 “전기차 구매의 걸림돌 중 하나였던 가격 장벽이 현재는 완전히 허물어진 상태”라고 짚었다.

올해도 전기차 판매량은 호조를 보이며 2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작년보다 더 구매 가격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먼저 정부는 올해 전기차 보조금을 지난해보다 더 늘리기로 했다.
2년 연속 사상 최대 판매량 이어가나 매년 줄이던 지원금을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한데 이어 ‘전환지원금’ 항목을 신설했다. 전환지원금이란 출고된 지 3년 이상 된 휘발유와 디젤 등 내연기관차를 폐차하거나 팔고 전기차를 사면 별도로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이런 방식으로 전기차를 살 때 기존 국고보조금(570만원)을 더해 최대 670만원까지 싸게 살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도 더 가격을 내렸다. 테슬라는 작년 말 기습적으로 1000만원가량 전기차 값을 인하했으며 이를 의식한 현대차·기아 역시 올해 전기차 가격을 최대 300만원 낮추기로 했다.

소비자들의 선택지도 더 많아진다. 중국 전기차의 공세 역시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작년 세계 전기차 판매 1위에 오른 비야디는 올해 2000만원대 보급형 전기차 돌핀을 한국서 출시한다. 지리자동차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올해 상반기 국내 판매에 들어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 사이에선 올해가 전기차로 갈아탈 가장 좋은 기회라는 입소문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수입차 딜러도 “올해 들어서도 전기차 구매를 문의하는 이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현장의 분위기를 귀띔했다.

작년에 이어 전기차 판매량이 또 한 번 사상 최대를 경신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물론 전기차 시장을 바라보는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건 아니다. 일각에선 이런 판매 증가세가 과연 올해도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부호도 제기된다.

전기차 판매에 급제동을 걸 수 있는 변수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최근 수많은 이들이 새롭게 전기차 오너가 된 만큼 이들의 불편한 경험들이 온라인상에서 확산하며 전기차 판매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선 충전 시설을 더 확충하고 배터리 수명도 더 늘어나야 하는데 아직 이런 부분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와 같은 돌발 사고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것도 문제다. 수년 전에도 벤츠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배터리 안전성이 큰 논란이 됐고 이후 ‘전기차포비아’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며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든 바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도 “지금의 판매 증가는 갑작스럽게 가격 진입장벽이 허물어진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뿐 캐즘을 극복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올해까지는 낮아진 가격 때문에 전기차가 잘 팔리더라도 2027년부터는 다시 시장이 침체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정부가 보조금을 대폭 줄일 예정이라 또다시 시장 열기가 꺾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김 교수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의 경우 보조금 혜택을 사실상 중단하며 지난해에도 전기차 판매 둔화가 이어졌다”며 “한국도 캐즘이 끝난 것이 아니다.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면 다시 가격이 비싸지고 판매량이 크게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충전 시설 확충, 배터리 수명 및 안전성 제고 등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들이 모두 사라져야 비로소 캐즘은 끝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