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새 모멘텀’ 왔나…전기차 캐즘 뛰어넘을 키워드는 ‘로봇’

입력 2026-01-30 09:29
수정 2026-01-30 09:56
[비즈니스 포커스]




2025년 말 리튬 가격 하락과 수요 둔화로 고전하던 배터리주가 로봇과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의 확대를 발판 삼아 가파른 회복세를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 28일 종가 기준 에코프로는 연초 대비 90.94% 급등했고 에코프로비엠(61.61%), 삼성SDI(51.05%), 엘앤에프(44.96%), 포스코퓨처엠(35.39%) 등이 일제히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같은 기간 19.39% 오르며 대형주 가운데서도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2차전지 산업이 더 이상 전기차 단일 수요에만 의존하지 않고 AI·로봇·ESS로 확장되는 새로운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캐즘’ 넘어…포트폴리오 다각화 나선 K배터리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산업의 한계가 아닌 ‘구조 전환기’로 보고 있다. 오히려 전기차에 집중됐던 수요 구조가 ESS, 산업용 배터리, 로보틱스 등 비(非)전기차 영역으로 확장되며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잠정 실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34.0% 증가한 1조3461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의 우려를 씻어냈다. 수익성 중심의 제품 믹스 운영과 북미 생산보조금(AMPC) 효과가 실적을 견인했다.

실적 발표 직후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장중 45만 원을 돌파하며 현대차를 제치고 코스피 시가총액 3위 자리를 단숨에 탈환했다. 시장이 2차전지의 성장축 이동을 확인하며 재평가에 들어갔다는 증거다.




휴머노이드 로봇, 하이니켈 배터리의 새 격전지

이번 랠리의 가장 강력한 촉매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에 설치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1만6000대에 달했다.

실험실을 벗어난 로봇이 공장과 물류 현장에 본격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CES 2026에서 공개된 현대차의 ‘아틀라스’는 로봇 배터리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좁은 공간에 배터리를 넣으면서도 수십 개의 관절을 구동할 고출력을 내야 한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이 최근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개발형 모델은 배터리로 구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번에 4시간이지만 무거운 물건을 옮기면 2시간으로 단축된다”며 “로봇의 구동 시간을 늘리기 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보다는 에너지밀도가 높은 삼원계(NCM) 계열 배터리가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K-배터리의 경쟁 우위는 하이니켈 기술력에서 기인한다. 그간 저가 공세를 펼쳤던 중국의 LFP 배터리는 무겁고 부피가 커 휴머노이드의 기동성을 저해한다.

반면 한국의 ‘울트라 하이니켈’ 기술은 가벼우면서도 높은 에너지밀도를 구현한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3세대에 LG에너지솔루션의 하이니켈 배터리 납품이 논의되고 중국 로봇 스타트업들조차 자국 배터리 대신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다. 에코프로비엠 등 양극재 기업들이 폭등한 배경에도 이 같은 하이니켈 필수론이 자리 잡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로봇 시장이 견인할 것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 ‘테스트베드’는 전기차가 아닌 로봇이 될 전망이다. 장정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로봇에는 하이니켈 삼원계가 쓰이고 있지만 성능 한계 돌파를 위해 향후 전고체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삼성SDI는 독자적인 무음극 기술로 900Wh/L급 전고체 배터리 양산 로드맵을 구체화하며 2027년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SDI는 2025년 2월 현대차·기아와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삼성SDI는 현대차그룹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MobED)’에 이어 서비스 로봇 ‘달이(DAL-e)’에도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업계에서는 향후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로 협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미국 베어로보틱스와 협력해 서비스·산업용로봇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포스코그룹 또한 미국 ‘팩토리얼’ 투자와 황화리튬 밸류체인 구축을 통해 로봇용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로봇용 전고체 배터리는 kWh당 600~800달러 수준의 고단가 형성이 가능해 배터리 기업들에는 ‘고마진 신시장’이 될 전망이다.

모건스탠리가 전망한 2050년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5조 달러)를 대입하면 관련 배터리 시장만 150조원에 달하는 거대 산업이 탄생하게 된다. 완전 고체 상용화의 핵심인 황화리튬 가격은 변수이나 로봇 시장에서는 충분히 흡수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황화리튬은 고체전해질 원가의 60~8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로 SNE리서치 등에 따르면 현재 kg당 2000~5000위안(약 40만~100만원) 선으로 일반 리튬이온배터리 소재 대비 10배 이상 고가다.

하지만 전기차와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은 전체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2~5% 내외로 극히 낮다. 고가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성능 향상에 따른 이점이 원가 상승 부담을 압도한다는 분석이다.




커지는 기대감 속 “수익은 아직”…신중론도

그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의 걸림돌이었던 저온 성능과 압력 유지 문제도 로봇 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해결이 쉽다. 로봇은 주로 실내에서 활동하고 배터리 교체가 용이하며 프레임 구조상 상시 압력을 가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기차에서 2030년 이후로 보던 전고체 시대가 로봇에서는 2027~2028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로봇 분야가 아직 본격적인 실적 기여 단계는 아니라는 신중론도 공존한다. 정경희 LS증권 애널리스트는 “신규 수요 창출 측면에서 긍정적이나 유의미한 신규 수요처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분석했다.

반면 장기적 잠재력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장기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간 10억 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며 “휴머노이드용 여분 배터리 판매를 고려하면 자동차 시장이 100% 전동화됐을 때보다 더 큰 수요가 형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휴머노이드 로봇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 미만으로 가격 민감도가 낮다”며 “총비용 측면에서 이점이 크기에 전고체 전지 등 고성능 배터리 사용 여력이 높아 배터리 업체에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