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28일(현지시간) "한국 국회가 무역 합의를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승인(ratify)하기 전까지는 한국과의 무역 합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무역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진행자가 "이미 협상을 마치고 발표까지 한 다른 국가들에 이것이 어떤 신호를 주느냐"고 묻자 베선트 장관은 "그냥 협정에 서명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인이 완료될 때까지 한국은 25% 관세를 적용받게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것이 상황을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명확히 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언급함으로써 법안통과가 이뤄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진행자와 베선트 장관은 '비준'으로 해석될 수 있는 'ratify'라는 단어를 썼지만, 전체 맥락상 이는 대미투자특별법 통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한미 관세 협상을 주도해 온 러트닉 장관이 직접 SNS 등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가운데 베선트 장관이 "승인하기 전까지 무역합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한국 측 파트너인 재정경제부와의 갈등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6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 중 투자가 시작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은 낮다”고 답했다.
이 인터뷰에서 구 부총리는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가 선정되더라도 부지 선정, 설계, 건설 등 거쳐야 할 절차가 있기 때문에 초기 투자자금 규모는 그보다 훨씬 작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국이 합의한 연간 200억 달러의 대미투자 한도를 언급한 것이다. “현재 외환 상황에서는 적어도 올해는 (투자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투자가 올해 상반기에 시작되기 어렵다'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이어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0일 구 부총리의 발언을 근거로 "한국이 환율 탓에 200억달러 투자를 늦춘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송고했다. 이 기사에서 블룸버그통신은 재정경제부의 입장을 물었을 때 상반기 중 투자가 어렵다는 기존 구 부총리 발언을 다시 확인했다고 적었다. 이후 블룸버그통신은 22일 그것이 "200억달러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는 추가 보도를 냈지만,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그립'을 다시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최지영 재경부 국제경제관리관도 최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환율 구두 개입(14일 X 게시글) 이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미 재무부 측에 ‘외환시장 변동성과 불안이 커지면 대미 투자 이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구 부총리가 워싱턴DC에서 베선트 장관을 만났을 때는 원화가치가 과도한 약세를 보이는 데 대한 공감대가 있었으며 베선트 장관이 이례적으로 공개 언급을 통해 한국을 지원하려고 했으나, 이후 이어진 구 부 총리의 인터뷰 등이 트럼프 정부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뉘앙스로 전달된 것으로 풀이된다.
베선트 장관이 "국회가 승인하기 전에는 무역합의는 없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양국 간 합의 내용과 배치된다. 양국은 지난해 11월 팩트시트 발표 당시 관세율 인하를 '관련 법을 의회에 발의한 달의 1일부터'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관세율 인하가 이미 이뤄지고 있던 상황에서 적용 시점을 '승인할 때까지'로 변경하는 것은 국내 기업들로서는 과도한 불확실성 확대다. 미국 측이 실제 관세를 원상복구하지 않고 구두 위협에 멈춘다고 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대미 수출 및 투자 결정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이미 추가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한국 의회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입법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나는 자동차, 목재, 의약품 및 기타 모든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시점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고,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행정명령이나 관보 게재 등의 행위가 뒤따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27일에는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도출할 것"이라고 했다. 압박을 통해 대미투자 특별법 통과를 촉진시키려는 의도가 더 강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저녁 캐나다에서 워싱턴DC로 이동한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과 면담을 계획하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이번 주 후반부 한국 측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어 대표는 "한국은 동맹이며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르면 내달 중 관련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