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건희 컬렉션

입력 2026-01-29 17:41
수정 2026-01-30 00:11
‘석유왕’ 록펠러의 아들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2세는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 인류 유산의 파수꾼이었다. 유럽에서 뉴욕으로 통째 옮겨 온 중세 수도원 건물(현 클로이스터 박물관)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고 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랭스 대성당 복원에 거액을 쾌척한 사례는 유명하다. 광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미국 재벌 솔로몬 R 구겐하임과 의사이자 사업가인 앨버트 반스도 개인 소장품을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 환원한 대표적 기업인이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반스재단 미술관은 “국가와 사회의 문화적 안목을 키우는 것이 진짜 부”라는 이들의 철학에서 탄생했다.

2021년 ‘이건희(KH) 컬렉션’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이런 기부는 다른 나라 일로만 여겨졌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며 ‘문화보국’을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는 선대회장의 뜻을 받들어 평생 모은 2만3000여 점의 국보급 문화재와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감정가만 3조원을 웃도는 이 유례없는 결단은 한국 기업인의 긍지가 됐다.

어제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갈라 디너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15일부터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번 특별전에는 6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부터 조선의 달항아리, 근현대 거장 김환기의 화폭까지 32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문화는 일회성 파도(wave)가 아니라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flow)”라며 전시회를 소개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3월 시카고 박물관과 9월 영국 대영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K아트’의 여정을 이어간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을 넘어 문화 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KH 컬렉션’은 우리 문명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 선대회장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 삼성이라는 기업 자산과 함께 오래도록 빛나길 바란다.

서정환 논설위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