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꼭 봐야 돼" 美 들썩…'이건희 문화보국' 알린 이재용

입력 2026-01-29 17:40
수정 2026-01-30 01:44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 인근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 오후 6시 무렵 검은색 고급 세단이 줄지어 정문 앞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영하의 추위에도 비교적 얇은 파티 복장이었다. 테드 크루스(공화·텍사스), 빌 해거티(공화·테네시), 앤디 김(민주·뉴저지) 등 미국 상원의원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게리 디커슨 어플라이드머티리어리얼즈 최고경영자(CEO)까지 정재계 거물이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이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을 찾은 것은 이날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증품으로 구성된 ‘이건희 컬렉션’의 첫 해외 전시를 기념하는 갈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문화보국’ 정신 소개

이날 행사는 삼성의 사회공헌 활동과 한·미 동맹의 끈끈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자리였다. 미국 정·관계, 글로벌 기업, 문화계, 한국전 참전용사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오후 3시께 일찌감치 현장에 들러 최종 상황을 점검했다. 그 옆에는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등 삼성 일가가 함께했다.

이 회장은 환영사에서 “이번 전시를 미국 수도에서 선보일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미국과 한국의 국민이 서로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6·25전쟁 등 고난 속에서도 이병철 창업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굳건한 의지가 있었다”며 “홍 명예관장은 고대 유물부터 근현대 작품까지 컬렉션 범위를 넓히고 다양화하는 데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DC 사로잡은 K컬처의 뿌리
이 회장은 이날 선대회장이 강조한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미술품 기증의 토대가 된 사회공헌 철학인 ‘문화보국’(문화로 나라에 보답한다) 정신을 알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선대회장은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식에서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은 이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2021년 2만3000여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번 워싱턴DC 전시는 ‘문화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고 믿은 이 선대회장의 뜻을 해외로 옮긴 첫 번째 사례다. 북미에서 40년 만에 열린 최대 규모의 한국 고미술 전시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걸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등 국보 7건, 보물 15건을 포함한 문화유산과 미술품 330점을 모았다.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문화재와 김환기의 ‘산울림’ 등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근현대미술 작품도 함께 선보였다.

지난해 11월 개막한 ‘한국의 보물’ 전시는 입소문을 타 미 동부 일대에서 ‘꼭 가봐야 하는 전시’로 자리매김했다. 이날까지 총 6만1000여 명이 다녀갔다. 오는 2월 1일 폐막까지 6만5000명가량이 방문할 것으로 박물관 측은 예상했다. 하루평균 874명꼴로, 스미스소니언에서 열린 비슷한 규모 전시회 관람 인원의 두 배가 넘는다. 행사는 이후 3월 시카고예술박물관, 9월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이어진다.

백악관 관계자에게도 이날 행사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위시해 로리 차베즈데레머 노동부 장관,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등이 행사장을 찾아 삼성과의 접촉을 강화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채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