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이토록 두려움이 컸던 적은 없었다. “거긴 어디야?” “위험한 나라 아니야?“ 아라비아반도 끝자락에 있는 오만(Oman)으로 떠난다는 말에 수도 없는 질문을 받았다.
이란과 예멘 사이, 지정학적 긴장이 감도는 중동 지도 위에서 오만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사막과 기름이 있는 이슬람 국가’라는 것 외엔 크게 알려진 랜드마크나 유명 인사도 없다. 종교적 배경 때문에 술과 담배, 클럽은 자취를 찾기 힘들다. 그 누구보다 자칭 타칭 ‘알코올 러버’이자 화려한 도시의 소음에 익숙한 여행자 아니던가. 도파민을 스스로 등지고 시작한 여행은 그 자체로 거대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만이란 나라는 ‘비움’이 곧 ‘채움’임을 오감으로 느끼게 했다. 이곳엔 시야를 가리는 마천루도, 화려한 네온사인도 없다. 그 대신 해와 달의 리듬에 맞춰 시간이 정직하게 흐른다. 낮엔 암석으로 이뤄진 거대한 협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에메랄드빛 오아시스 동굴 속을 헤엄치며 야생의 생명력을 만끽했다. 태양이 물러간 자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스크린이 펼쳐진다. 와히바 사막의 모래언덕(듄·dune) 위에 앉아 있노라면 미지의 누군가가 밤하늘에 흩뿌려놓은 은하수가 곧 영화가 된다.
알코올 기운을 빌려 여유를 찾고, 의미 없는 유튜브 쇼츠를 끊임없이 내리다가 잠드는 일상을 벗어나고서야 깨달았다. 술 없이도 자연의 경이로움에 취할 수 있고, 자극 없이도 전율할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필요 이상의 도파민에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오마니(오만인)의 환대도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해준다. 전 세계 무슬림 중 단 5%에 불과한 온건 이슬람 ‘이바디파’에 속한 이들은 당신의 종교와 배경을 묻지 않는다. 따뜻한 차와 함께 그해 수확한 달콤한 대추야자를 웃으며 건네는 그들의 따스함을 보고 있노라니 ‘중동’이라는 단어로 한 나라를 재단한 스스로의 편견이 부끄러워졌다.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상대에 대한 자신의 첫인상이 완전히 틀렸음을 고백한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오만’에 대한 ‘편견’을 지우는 순간, 자연과의 순수한 조우가 가능해진다. 침묵이 노래가 되고, 고립이 가장 완벽한 휴식이 되는 곳. 그 설레는 반전의 감동을 기록한다.황금빛 사막, 에메랄드빛 오아시스…나의 해방일지
오만의 4색 풍경수천 년 전, 항해사 신밧드는 오만의 항구 도시에서 망망대해로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어둠 속 별빛에 의지해 항로를 찾던 신밧드의 모험은 오만을 찾는 여행자에게 여전히 유효한 신화다. 오만은 외지인에겐 무한한 환대를 베풀지만, 동시에 엄격한 결핍을 선물하는 국가기도 하다. 수도 무스카트를 벗어나면 인터넷 신호가 뚝 끊기기 일쑤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파는 펍 하나 찾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당혹감은 역설적인 해방감으로 바뀐다. 인위적인 소음과 빛이 사라진 자리는 어느새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광이 가득 메운다. 고립이 곧 모험이 되는 곳, 오만의 네 가지 얼굴을 직접 마주했다.
와히바에서 본 사막의 두 얼굴
무스카트에서 차로 2~3시간, 소도시 비디야(Bidiya)로 들어서면 어느새 영화 ‘듄’의 한 장면 같은 붉은 모래 언덕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 예멘까지 이어지는 세계 최대 연속 모래사막 ‘루브 알 칼리’보다 규모는 작지만, 이곳 ‘와히바 사막’은 여행자들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활한 낙원이다.
한낮에는 렌트한 4륜구동 자동차로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를 질주했다. 낙타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난 풀을 뜯는 모습을 곳곳에서 마주친다. 사막 유목민인 베두인들이 제공하는 사막 투어를 신청하면 더욱 역동적인 체험이 기다린다. 수십 미터의 모래 언덕을 자동차로 치고 올라가는 ‘듄 배싱’은 고요한 사막 속에서 즐기는 짜릿한 반전이다. 투어 전후로 베두인의 전통 천막에서 즐기는 진한 오만식 커피와 달콤한 대추야자는 사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환대다.
태양이 사라진 뒤 사막의 밤하늘은 거대한 아이맥스 스크린이 된다. 은하수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10분에 한 번꼴로 별똥별이 긴 궤적을 그리며 쏟아진다. 인공적인 빛이 완전히 차단된 환경에서 마주하는 우주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한다.
사막이 있는 곳엔 오아시스도 존재한다. 와히바 사막에서 멀지 않은 와디샤브(Wadi Shab)에선 누구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작은 나룻배를 타고 물길을 건너는 것으로 시작하는 모험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왕복 1시간 반의 트레킹과 30분 이상의 수영을 감내해야 하기에 상당한 체력이 소요된다. 하지만 거친 협곡 사이를 헤치고 들어갔을 때 마주하는 에메랄드빛 물줄기는 그 모든 수고로움을 잊게 한다. 좁은 바위 사이를 잠수해 들어가는 동굴 속 수영장 ‘시크릿 풀’은 자연이 몰래 숨겨놓은 보상처럼 느껴진다.
해와 별이 건네는 인사
사막을 벗어나도 모험은 계속된다. 아라비아반도 최고봉, 해발 3000m에 달하는 자벨샴스(Jebel Shams)는 ‘중동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인기 트레킹 코스인 ‘발코니 트레킹(W6)’에 들어서는 순간, 발밑으로 펼쳐지는 수천 미터 깊이의 협곡에 압도당한다. 한쪽으로는 거대한 암벽을, 다른 한쪽으로는 천 길 낭떠러지를 두고 걷는 길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여름부터 초가을 사이 무스카트 인근 알 부스탄 비치에선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밤하늘 아래 플랑크톤 발광 현상을 보기 위해 현지인들도 해변으로 모여든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바다는 푸른 빛을 뿜어내며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변에 모여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발밑에서 반짝이는 파란 물결을 바라보며 밤의 축제를 즐긴다. 밤하늘의 별과 바다의 별, 그리고 인간의 온기가 어우러지는 비현실적 풍경은 오만이 주는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진다.'듄'처럼 사막 누비려면 4륜구동 렌터카 필수
오만 여행 100배 즐기려면오만 여행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알아둬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대중교통에 대한 기대다. 도시를 잇는 기차나 버스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자동차를 렌트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렌트비가 비싸지 않고, 산유국답게 기름값 부담이 매우 작다는 것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기준으로 3만~5만원이면 기름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이 무료고, 대부분 명소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차량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자벨샴스 트레킹 코스나 사막 여행을 계획한다면 4륜구동(4WD) 차량을 빌리는 게 좋다. 일부 구간은 비포장이고, 숙소에 따라서는 모래 언덕을 넘어야 해 일반 승용차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가는 길의 수고로움도 미리 계산에 넣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오만으로 향하는 직항 항공편은 없다. 두바이, 아부다비 등 인근 허브 도시를 경유하는 여정이 일반적이다.
오만의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매너도 갖춰야 한다.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나라인 만큼 주류와 돼지고기 섭취에 관한 규정이 엄격하다. 주류 판매 라이선스를 받은 대형 호텔을 제외하면 현지에서 술을 구하기 어렵다. 애주가라면 기내 면세점에서 인당 4L(지난해 말 기준)까지 허용되는 주류 반입 규정을 십분 활용하되, 반드시 숙소 등 사적인 공간 안에서만 즐겨야 한다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여성의 경우 모스크(이슬람 사원) 등 보수적인 지역을 방문할 때 머리와 어깨를 가리는 긴 스카프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여행 전 계절도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거북이 산란 투어가 여행 목적이라면 한여름도 좋지만 낮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은 여행자의 기운을 쉽게 앗아간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가 광활한 대자연을 누리기에 적합한 시기다.
무스카트·비디야=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