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유휴부지 등을 활용해 수도권에 6만 가구를 공급하는 계획을 내놨지만 지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협의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노원구 태릉CC(사진)와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은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주택 공급을 시도한 곳이지만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다. “충분한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서울시와 경기 과천시 등 지자체 협조를 얼마나 끌어낼지도 관건이다. ◇노원구 “지역 개발 병행돼야”
국토교통부는 이날 ‘1·29 주택공급 대책’에서 서울에 총 3만2000가구를 짓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용산국제업무지구(1만 가구), 태릉CC(6800가구), 용산 캠프킴(2500가구) 등 1만9300가구는 2020년 문재인 정부의 ‘8·4 대책’에도 이름을 올린 곳이다. 6년이 지나도 주택 공급 여건은 녹록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태릉CC는 주택 공급 규모를 애초 1만 가구에서 6800가구로 줄였다. 하지만 교통 혼잡과 환경 훼손에 대한 주민 우려는 여전하다. 정부가 문화재(종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고층 개발에 제동을 걸고 있는 종로구 세운4구역과의 역차별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태릉CC 인근에도 세계문화유산 태릉과 강릉이 있기 때문이다. 태릉CC를 개발하려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일부 풀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노원구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단순히 주택 공급을 넘어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역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며 “임대아파트는 법정 최소 비율(35%)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물량을 기존 6000가구에서 1만 가구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주거 규모가 6000가구를 넘으면 학교 신설이 필요하다는 게 교육청 입장이다. 그동안 최대 8000가구가 적정하다고 의견을 낸 서울시는 사업 지연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1만 가구까지 늘리면 토지이용계획을 바꿔야 해 사업 기간이 2년 이상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용산구도 이날 입장문에서 “인근 한남뉴타운에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데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 1만 가구가 들어서면 학교·통학 여건 악화, 교통체증 심화, 생활 인프라 부족 등 생활권 전반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기반시설 대책 없는 물량 중심의 접근은 전형적인 난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용산 캠프킴 주택 물량을 1400가구에서 2500가구로 확대하는 방안도 주민 반발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주민이 누릴 공간이 축소될 수 있어서다. 캠프킴은 주민 반대 외에도 문화재 발굴, 지하 오염 물질 발견 등의 문제를 겪기도 했다. ◇“얼마나 착공될지는 지켜봐야”경기 과천 주암동 일대 경마장과 국군방첩사령부 부지를 통합 개발해 98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두고 과천시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과천시 관계자는 “도로나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포화 상태라 대규모 주택 공급은 주민 생활 여건에 큰 부담”이라고 했다. 경마장을 운영하는 한국마사회는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다. 정부는 과천 경마장을 경기권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 평가도 엇갈린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정부가 가용한 선호 입지를 내놨다는 점에서 ‘알짜배기 대방출’이라 평가할 만하다”며 “수요자가 당분간 숨 고르기 양상을 보여 가격이 안정세를 나타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신규 가구 증가분과 멸실 대체 수요를 합쳐 서울의 연간 주택 수요가 약 8만 가구인 것을 고려하면 구조적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발표 물량 중 실제 착공이 얼마나 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8·4 대책의 경우 발표와 실제 착공 물량의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서울 공급 목표 물량을 3만3000가구로 제시했다. 하지만 진행 중인 현장은 강서구 마곡 미매각 부지, 중랑구 면목 행정복합타운 등 2200여 가구에 불과하다. 당시 4000가구를 짓기로 한 정부과천청사 유휴부지 개발 사업은 백지화됐다.
이인혁/손주형/오유림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