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생각하는 정의와 법의 정의는 왜 다를까요. '정희원의 판례 A/S'에선 언뜻 보면 이상한 판결의 법리와 배경을 친절히 설명해드립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28일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구형한 징역 15년 및 벌금 20억원, 추징금 9억4800여만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김 여사의 혐의 3개 중 통일교 금품수수 혐의(알선수재)에만 유죄를 선고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자본시장법 위반)과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 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죠.
윤석열 대통령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V(대통령)보다 앞선 실세 V0’로 불린 김 여사였기에 법원이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는 불만이 일각에서는 팽배한 상황입니다. 특히 ‘3대 특검’ 중 최장인 180일간 수사를 진행한 특검팀은 체면을 구겼습니다. 법원이 일부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이런 혐의를 제대로 명시해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또 이번 판결이 기존 법리에 일부 반한다는 법조계 일각의 지적도 있어 분명 논란이 될 수 있는 판결인 건 사실이지만 이번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판결문에 충실히 무죄 이유를 설명했습니다.'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왜 무죄일까 이번 판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진 부분은 2020년 4월 관련 의혹 고발이 접수된 뒤 오랜 기간 검찰 수사가 이뤄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왜 무죄가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 사건은 관련 심층 언론 보도도 수차례 이뤄졌고 검찰 수사도 장기간 진행됐던 만큼 사건 기록 또한 풍부했습니다.
법조계에서도 지난해 7월 출범한 민중기 특검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수사의 줄기를 뻗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영부인이 되기 전 핵심 인맥 다수가 이 사건에서부터 형성됐기 때문이죠. 주가조작 ‘주포’로 알려진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7부 우인성 부장판사는 김 여사의 시세조종 행위에 대한 ‘공모관계’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죄 판결의 핵심 근거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했다고 알려진 이 전 대표와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전 대표 등이 시세조종을 수행한 사실을 김 여사에게 직접 알려준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시세조종 세력이 피고인에게 직접 알려줬다는 진술이 없고, 블랙펄 측은 피고인을 내부 공모자보다 외부 거래 상대방처럼 취급한 정황이 있다”며 “공동정범이 성립하려면 의사의 결합과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법원이 특검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죄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특검이 기존 도이치모터스 검찰 수사에서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증권사 직원과의 통화에서 “김 여사가 계좌 관리인 측에 수익의 40%를 주기로 했다”는 육성은 주가조작을 입증할 특검의 ‘스모킹건’(핵심 증거)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증거가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사실상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으로는 활용할 수 있어도, 수행자들이 주가조작 실행 여부를 김 여사에게 직접 알리지 않은 내용인 만큼 ‘공모관계’가 성립하긴 어렵다고 본 것입니다.
특검의 부실한 수사와 공소 유지에 대한 비판도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법원이 주가조작 정황을 사실상 인지하고 있다고 본 만큼 특검이 만약 김건희 여사를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면 충분히 유죄를 받을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쟁점은 특검의 항소로 추후 항소심에서 다퉈질 예정입니다.
판결 자체의 법리적 논란도 추후 항소심에서 다퉈질 쟁점으로 꼽힙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초기에 수사했던 김태훈 대전고검장은 이번 판결을 비판하면서 “권오수 등 공범들의 기존 판결에서 김건희는 다수의 통정매매에 가담한 것으로 인정됐다”며 “김건희를 공동정범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분업적 역할 분담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로도 공동정범이 성립할 수 있다는 기존 판례 법리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주가조작에 이용된 계좌를 제공해 방조한 김 여사의 행위가 사실상 주가조작의 공동정범이라고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 제공은?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로부터 무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은 데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으나, 재판부는 이 역시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명씨가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실시하던 여론조사 결과를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배포한 것일 뿐, 이를 두고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여론조사 비용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피고인 부부는 조사 결과를 제공받는 상대방 중 하나에 불과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나아가 김 여사가 여론조사의 대가로 김영선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약속한 것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고 봤습니다. 명 씨가 2022년 3월 김 여사로부터 공천을 약속받았다는 취지로 언급한 뒤에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윤상현 의원 등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공천을 부탁한 점을 들어 약속의 존재를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만약 ‘V0’로 꼽히던 김 여사가 ‘확정적으로’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약속했다면, 명씨가 굳이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돌리며 공천을 부탁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는 것이죠.
재판부는 또 명씨에 대해 “‘빵선 국회의원 이준석을 당대표로 만들고, 빵선 대통령 윤석열도 당선시켰으며, 10년 백수인 오세훈도 서울시장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등 자기 능력에 대한 과장이 심하고 다소 망상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며 “그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명 씨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믿기 어려워 김 여사가 여론조사를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다는 혐의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지위를 영리추구 수단으로 오용"...추후 재판 전망은하지만 김 여사가 통일교로부터 교단 지원 청탁과 함께 샤넬 가방과 그라프 목걸이 등 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매우 엄중한 형을 선고했습니다. 알선수재 혐의와 관련해선 특검이 사실상 구형할 수 있는 최고형을 구형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사자성어 등을 써 양형 이유를 밝히며 영부인의 지위와 그에 따른 책임을 명시하고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질타했습니다.
"영리추구는 인간의 거개(擧皆·거의 대부분)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지위가 영리추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권력에 대한 금권(金權)의 접근은 다반사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위가 높을수록 이를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피고인(김 여사)는 자신의 지위를 영리추구의 수단으로 오용했습니다. 피고인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청탁과 결부되어 공여된 고가의 사치품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수한 다음, 이를 가지고 자신을 치장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처럼, 굳이 값비싼 재물을 두르지 않더라도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판결을 두고 법원이 ‘대통령 부인’에 대한 공적 지위와 역할을 무겁게 봤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여사는 특검 조사에 출석하면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규정했지만, 법원은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지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특검과 김 여사 측이 모두 항소 의사를 밝히며 재판은 이어질 예정입니다.
또 통일교 집단 입당 의혹 및 ‘매관매직’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서도 기소돼 두 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 김 여사에 대한 법적 판단은 더 남아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 영부인의 지위와 그 책임에 대해 법원이 엄중한 판단을 내린 만큼 김 여사가 추가적인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